요한복음 1장 14절은 우주 만물 초월한 존재가
가장 낮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사건을 원색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성탄하신 예수는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니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탄을 감사하는 것은 물론
재림하실 예수를 기쁨으로 맞이할 신앙 가져야
올해는 성탄절 장식이 학교 건물 중 가장 높고 좋은 위치에 있는 도서관 꼭대기에서부터 아래로 길게 연결해 점등돼 외면적으로 성탄절이 다가옴을 느끼게 했습니다. 기말고사를 치르는 학생들에게도 성탄 분위기는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즐거움과 여유를 주기도 합니다. 성탄절 기원이 어떠하든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가 알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한 지점에서 출생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신학적으로 이 출생은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꾼 사건입니다.
매년 성탄절이 되면 동방 박사들처럼 예수님의 출생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분위기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축복으로 다가옵니다. 물론 다른 한편에서는 헤롯처럼 거짓으로 예수를 경배한다고 하면서 기독교를 이념이나 사업으로 삼아 자신의 유익을 채우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제는 성탄절이 신앙 여부와 상관없이 공휴일로, 쇼핑 기회로, 연말 분위기와 겹쳐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절기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절기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탄절 그 내면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며 예수 탄생의 은총이 오늘 내게 예수 재림과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구속사의 흐름에서 다시 한번 솟아나기를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강조합니다. 물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실체입니다. 그러나 영원 전부터 계시던 예수님의 선재(先在), 인간의 몸을 입으신 성육신(成肉身), 공생애, 수난, 죽음, 부활, 승천(昇天), 재림(再臨)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고, 또 어느 것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일련의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선포입니다.
특히 요한복음 기자(記者)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1:14)’라는 표현으로 예수의 출생을 선포합니다. 이 짧은 선언에 엄청난 예수의 ‘비우심’의 비밀이 담겼습니다.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와는 달리, 요한복음은 영원에서 영원까지라는 시점을 제시하면서 예수의 존재성을 무시간적이며 초월적인 세계에서 우리 인간이 알 수 있는 시공간 속으로 압축하여 설명합니다. 그 절정이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입니다.
요한복음 이 구절에서 ‘말씀(로고스)’은 언어가 아니라 헬라 개념에서 초월적인 존재, 즉 우주를 움직이는 힘이나 원리를 인격화한 표현입니다. 구약에서 지혜를 인격화해서 표현한 것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잠8:12).
요한복음의 ‘육신이 되어’라는 표현은 매우 직설적입니다. 초월적인 존재가 더 낮추실 수 없는 상황까지 낮춰진 상태에 대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에는 예수의 낮추심을 원색적으로 제시합니다. 이 찬양시는 빌립보서가 기록되기 전부터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애용했습니다(빌2:6~11). 예수님의 성육신과 그의 고난에 대한 감사의 고백이 이 찬양시에 아주 잘 표현되었습니다. 이 찬양시야말로 성탄절 본래 의미를 일깨우는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6~11).
말씀이 육신이 되신 성탄은,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입니다(막1:1).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 장엄한 예수 사건은, 그 예수의 장엄한 재림으로 귀결될 것입니다(살전4:16~17). ‘오심’과 ‘다시 오심’이 균형을 이루는 성탄이 성탄절 속에 담긴 성탄의 내면이며, 성탄절의 지향점입니다.
/김선배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신약학
위 글은 교회신문 <55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