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8-06-13 14:48:45 ]
벌써 7년 전 일이다. 교수 정년 은퇴를 앞두고 내 인생 65년을 뒤돌아보니 후회와 더불어 회개가 많이 됐다. 그때 깨달은 바가 있다. ‘바쁘게 사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 때문에, 어떻게 바쁘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내가 하늘나라 주님 앞에 이르렀을 때 “너 무엇 하다 왔느냐?” 물으신다면, 내놓을 상급이 전혀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교수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바쁘게 사노라 했지만, 실상 나만 위한 내 자랑이 가득했다. 진땀 날 정도로 하나님께 죄송해서 기도로 간청했다.
“내 육체의 남은 때는 하나님 뜻을 실제로 이루어 드리는 삶이 되도록 기회를 한 번 더 주세요.”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뒤늦게 목회의 길을 열어 주셔서 행복한 시간으로 내 마지막 인생을 채우고 있다.
인생의 참행복은 소유가 많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참된 가치를 추구하고자 할 때, 또 가치 있는 인생을 살 때, 그 인생이 참행복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체험해 보았다.
오래전, 모 방송국 ‘기자 수첩’에서 51세의 L기공 해외 영업 차장의 사연을 시청한 적이 있다. 독학한 영어 실력으로 해외 영업팀을 맡아 40억짜리 수출계약을 따냈고 중국과 캐나다에 수출 시장을 뚫는 데 전력했다.
어느 날 아침, 머리가 아프다며 지어 온 알약을 먹고 평소처럼 출근한 그는 오후에 “도저히 못 견디겠다”며 병원에 가자마자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간 경화가 진행된 패혈증이었다. 잠깐 깨어난 그가 호흡기를 떼고 일어나 “빨리 회사 가야 하는데…”라고 한 말이 유언이 됐다. 12일간 의식불명 상태로 있다가 아내와 중학생 두 자녀를 남기고 그는 죽었다. 이 샐러리맨의 죽음. 이보다 더 급작스럽게 죽어 가는 이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현대인은 정말 바쁘고 피곤하게 살아간다.
도대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유치한 질문 같지만, 이것은 내가 60세를 넘기면서 진지하게 한 질문이다. 전도자의 한탄이 들린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1:2~3).
‘도대체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이 수수께끼에 관하여 예수님은 인간의 뜀박질을 두 종류로 제시하신다. 똑같이 바쁘게 뛰어도 우선순위가 다르다는 것이다.
첫째, 하나님 없이 사는 이방인의 뜀박질이 있다.
인생의 우선순위를 무엇 먹을까, 무엇 마실까, 무엇 입을까로 삼는다. 내일을 염려하며 가진 바를 족한 줄 모르고 그냥 마구 뛰는 삶이다. 사실 하나님을 모르니 내세 소망이 없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삶이 대부분 그렇다. 이런 인생에 관해 논한 내용을 살펴보자.
▲ 염세주의 문학가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Will to Live(맹목적으로 살려는 의지)’로 인간을 정의했다. ‘물에 빠져 죽어 가면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버둥대듯 숙명에 이끌려서 부질없이 살기만 하려고 허우적대는 인생,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급급한 인생, 살아서 무엇하랴 차라리 죽어 버리자’라며 자살 예찬론을 써서 숱한 젊은이를 죽게 했다.
▲ 정신 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Will to Pleasure(쾌락을 지향하는 의지)’로 인간을 본다.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면 찾아오는 집착이다. 인간의 모든 것을 성(性) 본능의 표현으로 보고 정욕대로 살아가는 육신에 속한 자들, 여기서도 진정한 만족이 없다.
▲ 무신론적 실존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는 ‘Will to Power(권력을 지향하는 의지)’로 인간을 그리면서 ‘초인(超人) 자라투스트라’를 등장시켰다. 권력은 다른 사람을 정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런 것들은 세상에 대한 집착이다. 그러나 인간은 먹으면 먹을수록, 마시면 마실수록, 입으면 입을수록 끝없는 욕망의 굴레에 빠진다. 달려가도 달려가도 잡히지 않는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 자녀의 뜀박질이 있다. 여기서 주님은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필요 없다고 말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있어야 하고 이에 더하신다고 했다. 바로 우선순위 문제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다(마6:33). 내일 염려를 주께 맡기고 한 날 괴로움을 그날에 족한 줄로 알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다(마6:34).
▲ 정신 분석학자 빅토르 프랑클(Victor Frankl) 박사는 ‘Will to meaning(의미를 지향하는 의지)’으로 인간을 본다.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이 충족감이요 사명감이다. 의미를 느끼는 자는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태초에 말씀(의미)이 있었는데, 그 말씀(의미)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요1:1~14). 그분을 영접하고 그의 이름을 믿는 것이 하나님 자녀가 되는 길이요, 우리 인생의 의미를 찾는 참길이다.
▲ 바울(Paul) 사도는 ‘Will to Jesus, Will to Christ(그리스도를 지향하는 의지의 삶)’로 천명한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害)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빌3:7~8).
그런 삶을 구체적으로 사는 게 무엇인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7~8)로 사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백성의 삶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우선순위로 구하며 사는 것이라고 하신다. 그것이 도대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다음 호 ‘당신 삶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下>’ 편에서 한 인물의 고백을 통해 살펴보겠다.
/최종진 목사
前 서울신학대학교 총장
前 한국기독교학회장
위 글은 교회신문 <57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