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9-07-30 11:52:30 ]
믿노라 하면서 삶에 변화 없다면
복음 전하는 말도 껍데기에 불과
예수를 주인으로 인정하며 살 때
믿음 자라고 복음 전할 능력 생겨
복음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또 구원받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성숙하고 온전하게 자라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이러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믿습니까?”라고 질문하면 아마 그리스도인 대부분이 주저 없이 큰 소리로 “아멘”이라고 응답할 것입니다.
그렇게 믿는다면 실제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는 자들의 삶은 변화해야 합니다. 또 변화는 날마다 계속되고 새로워져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자로 성장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은 지 10년 된 사람보다 20년 된 사람에게서, 20년 된 사람보다 30년 된 사람에게서 더 거룩하고 경건한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날마다 변화하고 새롭게 성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이건 정말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실제적인 능력을 생명력 있게 보여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세상은 예수 믿노라 하는 이들에게서 위선적인 모습만 보게 됩니다. 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합니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우리가 듣고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에 구멍을 뚫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시들게 하는 구멍들
사람 낚는 어부의 그물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런데 그물에 구멍이 뚫렸다면, 어떻게 물고기를 낚을 수 있겠습니까? 구멍 난 그물은 복음을 왜곡하거나 복음의 의미를 크게 생략하고 위축시킵니다. 그렇다면 복음이라는 그물에 난 구멍들은 무엇일까요? 그 구멍은 다음 네 가지로 지목할 수 있습니다.
첫째, 죄(罪)의 구멍입니다. 복음은 죄인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구원 소식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문제는 ‘인간은 왜 죄인인가?’에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근원적인 죄는 인간이 하나님에게 지은 죄입니다. 인간 간의 도덕적, 윤리적 죄악은 근원적인 죄에서 파생한 것들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앉아 하나님과 같이 자기가 주인이 된 듯 하는 것이 근원적인 죄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전도하거나 복음을 전할 때, 죄를 ‘인간 사이에 지은 죄악’으로 단정하고 있습니다.
둘째, 부활(復活)의 구멍입니다. 부활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죽으셨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하나님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게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하심으로 새 생명이 시작됐고, 십자가 대속의 피가 모든 죄를 완전하게 영원히 해결해 주셨다는 증거가 바로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조차 그분이 부활하신 후에야 예수님의 말씀과 성경을 믿고 순교하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셋째, 회개(悔改)의 구멍입니다. 회개는 죄를 사함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첫째에서 말한 것처럼 근원적인 죄는 인간끼리 지은 죄가 아니라 하나님을 상대로 범한 죄이기에 회개는 죄, 즉 자기가 주인이 된 죄, 자기를 하나님 위치에 올려놓은 근원적인 죄를 용서받는 것이어야 합니다.
넷째, 영접(迎接)의 구멍입니다. 영접은 자기가 주인 자리에서 내려와 회개하고 그 자리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속죄받아 살길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예수 믿는 것이 구원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나의 주로 믿고 시인하고, 영접하면 구원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 된 삶
그동안 우리는 급하게 복음을 전하다가 복음에 담긴 핵심 요소의 의미를 지나쳐 버리거나 왜곡했습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내 인생의 주인을 바꾼다는 말입니다. 더는 자기가 삶의 주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그렇게 자신의 마음에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기존의 복음 메시지라는 그물에 난 구멍을 깁지 않고서는 매일 주님의 은혜 가운데 스스로도 놀랄 만큼 성장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곡하거나 오염되거나 일그러지지 않은 순전한 복음 메시지만이 순전한 그리스도인을 낳을 수 있습니다.
/박영철 목사
침례신학대학교 명예교수
주님의기쁨교회 담임
위 글은 교회신문 <63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