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0-02-26 08:46:55 ]
오늘 내 삶은 하나님 말씀을
농담 정도로 여기는지 아니면
말씀을 진리의 생명 말씀으로
여기는지 잘 드러내 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이야기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해피엔딩’으로 끝날 듯했지만 결과는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는 아브라함과 가장 가깝게 산 롯, 그는 삼촌인 아브라함의 삶을 보며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 약속을 받은 지 25년 만에 약속의 씨인 이삭을 낳은 내력은 그 사실을 보거나 듣는 사람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롯은 삼촌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보를 알게 모르게 배우고 익힐 복된 자리에 있었습니다. 목적지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을 믿고 무작정 고향을 떠난 일을 필두로, 애굽으로 내려간 삼촌이 숙모 사라를 바로 왕에게 빼앗길 뻔한 위기에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습니다. 오히려 많은 재물을 얻어 거기서 안전하게 가나안 땅으로 나오게 하신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하나님의 당부를 농담으로
여긴 자들의 비참한 결말
그러나 롯은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사는 삶의 결말을 보지 못한 채, 아브라함을 떠났습니다. 롯이 정착한 소돔 땅은 애굽처럼 풍요로워 보였지만 실상은 죄악이 극심하여 불과 유황으로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땅이었습니다. 그는 그 와중에 하나님의 천사들로부터 당장 그곳을 떠나되 모든 가족이 함께 떠나라는 권고를 받았습니다. 롯은 천사들의 말을 듣고 사위 될 이들에게 멸망당하지 않으려면 함께 떠나자고 말했습니다. 사위 될 사람들은 롯 덕분에 멸망에서 벗어나 구원받을 기회를 얻었지만 결국 그들에게 그 기회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위 될 사람들이 롯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고 농담으로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실없는 사람이라도 멸망을 코앞에 둔 심각한 시간에 농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롯이 곧 쏟아질 하나님의 재앙에서 벗어날 길을 제시해 주었지만, 사위 될 자들은 그의 말을 농담으로 들었습니다. 죽음이냐 생명이냐, 생사가 걸린 문제를 농담처럼 받아들인다면 결국 그들에게는 멸망과 죽음만 닥칠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소돔과 고모라의 부요함, 영화로움, 평안함, 쾌락 따위를 영원한 생명과 맞바꿀 만큼 가치가 있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바로 그 날 밤에 들이닥칠 재앙의 비보를 농담이라 여길 만큼 그들은 자신의 삶에 도취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진지하게 반응해 자기 생명을 지켰어야 했는데 하나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창19:14).
예수의 핏값으로 산 인생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말씀을 읽을 때나 들을 때나 공부하거나 암송하고 묵상할 때 성령님은 그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한 번도, 한 군데서도 하나님은 헛말이나 농담으로 허투루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세상에 친히 오셨고,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그분이 하나님이심과 하나님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실을 증명해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사 십자가에 피 흘려 대속하시고 죄 없으신 증거로 부활하셨다는 하나님의 진리 말씀입니다. 바울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롬14:7~9)고 했습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고,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은 절대 하나님의 농담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좌우할 이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지 말고 우리의 존재 자체와 삶의 목적 자체가 그 복음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오늘 내 삶은 내가 하나님 말씀을 농담 정도로 여기는지 또는 진리의 생명 말씀으로 여기는지 잘 드러내 줍니다.
/박영철 목사
침례신학대학교 명예교수
주님의기쁨교회 담임
위 글은 교회신문 <66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