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하나님의 침묵

등록날짜 [ 2020-05-09 10:54:43 ]

다만 우리의 조급하고 짧은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을 쫓아가지 못할 뿐

성도들은 말씀을 붙잡고 순종해야


일본의 기독교 작가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은 17세기 일본에서 박해받던 기독교(천주교) 이야기입니다. 당시 일본 천주교인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온갖 박해와 고문을 받습니다. 신도들을 십자가에 묶어 갯벌에 세워 놓았는데, 밀물이 되면 바닷물이 밀려와 신도들은 물에 잠겨 죽음을 맞이합니다. 예수 믿기를 부인하면 살 수 있는데도 순박한 농민 신도들은 자기들을 전도한 신부(神父)가 보는 앞에서 죽어 갑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포르투갈 신부는 그 광경을 보며 울부짖으며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하나님, 당신은 왜 침묵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그때 그의 귀에 들려오는 뚜렷한 주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저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을 뿐이다.” 스데반이 유대인이 던진 돌에 맞아 죽어 갈 때 하늘나라의 영광을 보이고, 주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일어나 그 영혼을 반기며 영접합니다(행7장). 그러나 유대인은 하나님의 침묵에 돌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시편 83편 기자도 하나님의 침묵에 울부짖습니다. “하나님이여, 침묵치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치 말고 고요치 마소서”(시83:1).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이유

신앙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 같을 때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하나님의 침묵에 지쳐 무당집으로 달려가기도 합니다. 사울왕이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듯 말입니다(삼상28:7). 무당집 앞에 ‘기독교인 대환영’이라 쓴 곳도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 처절하게 죽어 가시며 하나님의 침묵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 하고 절규하십니다. 그러나 그 침묵이 끝나는 날, 예수는 사망을 이기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저 정말 급해요. 다 아시잖아요! 지금 사면초가예요. 주님! 빨리 응답해 주세요!” 하지만 하나님은 침묵하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우리를 더 당혹케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기간이 상당히 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침묵하실까? 그 침묵의 의미가 무엇일까? 성경 속 사건에서 그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1. 하나님은 침묵을 통해 우리를 만나십니다. 욥이 욥기 1~37장에서 기나긴 극한 고통을 겪는 동안 하나님은 철저하게 침묵하십니다. 왜 그랬을까요? 욥기서 결론에 나타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 욥의 믿음은 귀로 듣는 정도의 체험을 넘어 하나님의 긴 침묵 가운데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성숙한 신앙,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체험을 한 것입니다. 나의 위기와 하나님의 침묵은 내가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고 만나는 기회입니다. 저도 거기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회개를 기다리실 때 침묵하시기도 합니다. 철저히 회개하지 않으면 그 침묵은 계속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인간의 방법으로 하갈을 취해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삼으려 한 불신앙 때문에 13년 동안 침묵하십니다. 성도가 죄를 회개하여 믿음을 회복할 때까지 하나님은 기회를 주십니다. 이럴 때는 회개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3.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에게 훈련의 의미가 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더 큰 일을 하도록 우리의 그릇을 크게, 깨끗하게, 요긴하게 만드시는 섭리입니다. 그 침묵 때문에 부르짖고, 무수한 질문을 하면서 하나님을 알아 가고, 결국 응답의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그 과정 가운데서 동굴이 아닌 터널의 끝에 이르러 하나님을 찬양하고 성숙한 성도로 거듭나실 겁니다.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침묵은 분명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라는 약속을 붙잡고 그것에 순종해야 합니다. 내게 맡겨진 지금 일을 더 성실히 감당하며 하나님의 침묵에 순종하십시오. 침묵 시기가 지나면 가장 적절한 때 하나님은 반드시 행동하십니다.


그 침묵 속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행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만물이 침묵 속에 잠길 때, 가장 역동적으로 역사하십니다. 다만 우리의 조급하고 짧은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을 쫓아가지 못할 뿐입니다. 주님이 지금 말씀하십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너의 고통을, 너의 위기를 함께 나누고 있을 뿐이다.” 내가 하나님 자녀라면 하나님 침묵은 내게 분명한 의미가 있습니다.


  

/최종진 목사
前 서울신학대학교 총장
前 한국기독교학회장

위 글은 교회신문 <67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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