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1-03-16 16:32:28 ]
교만과 자만 탓에 무너져
하나님이 쓰시는 큰 인물은
주께서 축복하시고 잘될 때
겸손히 주님만 더 의지
성서를 보는 두 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첫째는 망원경으로 ‘전체를 보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8장의 엘리야는 우상종교집단을 대적하는 힘 있는 영웅입니다. 둘째는 현미경으로 어느 한 부분, 즉 본문을 집중적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열왕기상 19장의 엘리야는 정말 우리와 별반 차이 없는 너무나 초라한 모습입니다.
승리 후 탈진한 엘리야
북왕국 이스라엘이 극히 타락하던 절망의 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격동시켜 왕궁에 나타나게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 “앞으로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아니하리라”(왕상17:1)는 말을 하고는 사라져 버립니다. 그의 말대로 3년 6개월간 이슬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 후 나라는 가뭄으로 심각한 지경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백성들과 바알 선지자들을 모으라고 합니다. 아합왕은 그의 말대로 갈멜산으로 모이게 합니다. 먼저 그 무리들로 기도해 비를 내리게 하라고 합니다. 바알신 제사장 850명이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자 엘리야가 단독으로 나서 기도를 드립니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되심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왕상18:36)라고 기도하자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을 순식간에 핥아 버립니다. 비가 억수로 내리고 가뭄이 해갈됩니다. 동시에 거짓 무리들을 처단하고 우상들을 찍어 없애는 통쾌한 대승리를 이룹니다.
이쯤 되자 엘리야의 생각에 ‘이제는 그 악독한 왕후 이세벨도 무릎을 꿇으리라’, ‘백성들도 돌아오리라’ 싶어 당당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전혀 반대로 갑니다. 엘리야는 “네 생명을 기어코 죽이리라”는 왕후 이세벨의 말 한마디에 두려움이 엄습하고 절박하게 흔들렸습니다.
한 여인의 협박에 떨면서 도망치는 사람. 그가 엘리야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도 “엘라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약5:17). 갈멜산의 영웅이 여지없이 무너져 갑니다. 엘리야는 브엘세바 광야로 도망가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 “하나님이여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라며 쓰러져 뻗어 버립니다. ‘번 아웃(burn-out)’, 완전 탈진합니다. 모든 기대도 희망도 없어져 힘도 의지도 없이 광야에 내팽개쳐진 상태입니다.
진실로 끝까지 겸손하라
엘리야 같이 큰 믿음의 사람에게도 처절한 위기가 닥칠 때가 있습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최남단까지 도망합니다. 엘리야는 인생에, 사명에 지쳐 버렸습니다. 무너질 수 있는 최후 한계선까지 내려간 것입니다. 무참히 탈진(脫盡)한 것입니다. 여기서 질문이 있습니다.
‘왜 엘리야가 무너져 내렸을까’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승리의 지점에서 자신도 모르게 교만, 자만에 젖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 승리 후 당연히 악한 무리가 변화되리라 기대했습니다. 엘리야는 안도하며 승리 지점에서 자만에 빠졌습니다. 순진한 것입니다. 악이 얼마나 교묘하고, 인간이 얼마나 악한데 말입니다.
저도 하나님이 좀 쓰시면 은근히 자만했다가 실패한 적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큰 인물은 하나님이 축복하실 때, 잘되어 갈 때, 거기서 하나님 앞에 더 겸손히 감사하며 주님을 더욱 의지합니다. 그들이 큰 그릇입니다. 나같이 작은 인간은 축복의 자리, 성공의 자리, 배부른 자리에서 교만에 빠져 하나님을 배신하고 교회를 소홀히 하고 주님을 묘하게 멀리합니다.
어느 날 큰 교회 담임목사로 취임한 분이 교수실로 찾아왔습니다. 그가 학교에까지 와서 90도 인사를 하며 “교수님께 기도받으러 왔다”며 기도를 부탁하기에 기도해 주고 세 마디를 전했습니다. “진실로 겸손해라! 실제로 겸손해라! 끝까지 겸손해라!” 그 목사님은 큰 그릇이기에 그럴 수 있었습니다. 그때 담임교수였던 제가 감동이 되었습니다.
잘나갈 때 조심해야 합니다. 산에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더 조심해야 합니다. 엘리야는 이 지점에서 흔들렸습니다. 한국교회가 침체된 이유가 잘나가던 자리에서 교만하고 자만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실패한 이유를 다음 주에 더 알아 보겠습니다.
/최종진 목사
前 서울신학대학교 총장
前 한국기독교학회장
위 글은 교회신문 <69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