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등록날짜 [ 2021-04-12 15:03:53 ]

영생과 천국소망 가졌다면
인생의 가슴 아픈 이별도
고통도 받아들일 수 있어
이 땅이 전부가 아니므로…


지난달 10일은 마음이 아리도록 슬픈 날이었다. 아끼던 제자이자 동료교수인 권 교수가 소천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는 고등학교 교사였다가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해 좀 늦게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신학대학교 졸업 후 예루살렘의 히브리대학에서 학위과정을 마치고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을 때 내가 교무처장으로 있었다. 그는 성실하고 묵직한 성격으로 인정받는 교수였다.


신앙인의 마지막 모습
그의 아내에게서 “새벽에 평안히 주님 품에 안겼어요”라는 짤막한 문자가 마음을 울렸다. 6개월간 무서운 암세포와 싸우며 생사의 갈림길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몸부림쳤다. 그러나 사순절 네 번째 주일을 앞두고 그는 저 하늘나라로 훌쩍 이사를 갔다.


이튿날 문상을 갔다. 사모님은 지친 모습이지만 신앙적 의지만은 대단한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었다. 다행스러웠다. 그게 죽음을 맞는 신앙인의 모습이기에 위로의 말이 별로 필요가 없었다. 왜 그런가. 한 평생 주를 위해 살아온 마지막 모습이 저 천국의 메시지를 전하며 갔기 때문이다. 권 교수가 마지막 힘들게 내뱉은 말은 “깃발을 세웠다, 깃대를 꽂았다”였다. 그 후 의식을 잃고 얼굴이 광채를 내며 세상의 짐을 다 풀어놓고 평안한 표정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그의 아내가 전해 주었다. 그때 지인이 보내온 ‘사순절의 묵상’이 떠올랐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내 인생에 폭풍이 있었기에 주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십자가를 지게 해 주셨기에 주님 마음을 배울 수 있었음을 감사드립니다. 때때로 가시를 주셔서 잠든 영혼을 깨워 주셨고, 한숨과 눈물도 주셨지만 그것 때문에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도 배웠습니다. 실수와 실패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겸손을 배웠습니다. 남과 비교하며 살지 말게 하시고, 질투의 화산 속에 들어가지 말게 하시고, 돈을 목적 삼게 하지 마시고, 으뜸을 자랑으로 여기지 않게 하소서. 감사의 노래를 내 심장에 주소서.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를 사랑하게 하옵소서.” 권 교수는 이렇게 살아가다 승리의 깃발을 꽂으며, 훌쩍 저 세상으로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에도 감사할 수 있는 믿음
예수 믿는 성도들이 천국 소망 없는 자들과 엄연하게 틀린 점이, 바로 그 죽음의 순간이다. 신앙인들도 여러 고난을 당한다. 어떤 분은 젊은 나이에 죽기도 하고, 어떤 분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또 어떤 분은 사업에 실패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자가 훌쩍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거나 배신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다니엘의 세 친구가 죽음의 화염 앞에서, 대제국의 황제에게 내뱉은 “그리 아니하실찌라도”다(단3:18). 우리의 자존감, 긍지, 신앙이다. 왜냐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지금도 분명 살아 계시기에 영원한 소망, 하늘의 자존감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 앞에, 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외마디는 이 세상을 넘어 저 하늘로 향하는 마음의 고백이며 아픔과 고통의 절규다. 권 교수의 죽음에 직면한 아내와 자녀들을 보며 가슴이 ‘찡’했다. 남편과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언뜻 베드로 신앙고백에 주셨던 주님 말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가 떠올랐다.


권 교수의 아내가 피를 토하는 슬픔을 삭이며, 먼저 땅에서 풀었다. 땅에서 풀어야 하늘에서도 풀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편을 풀어준 거다. 내가 풀면 남편도 풀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기도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합니다.” 남편에게 건네는 아내의 마지막 선물. 그건 한없이 큰 사랑이었다. 거기서 치유의 눈물이 흐른다. 그게 바로 그리스도인의 고통과 아픔을 이기는 고차원의 비결이며 현실을 받아들이는 미래의 소망이다(합3:17~18).


이 땅의 고난에도 영생 바라보며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이러한 믿음으로 승리해 왔다. 우리도 이 고백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심지어는 이 신앙의 자존감을 가지고 수많은 성도들이 단두대에서 순교했다(히11:35~38). 하나님께서 그들을 받으셨고, 영원한 천국에서 가장 큰 영광과 상을 이미 주셨다.


고난주간을 보내고 부활절을 맞으며 이 믿음에 굳게 서시기 바란다. 오늘의 아픔과 답답함과 두려움을 이 신앙으로 이겨보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영원한 하늘의 자존감으로 사는 성도들이다. “그리 하지 않으시더라도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감사합니다. 주님 당신이 옳은 길이고, 주님 당신이 정답이기에, 주님 당신을 많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때로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손해를 보거나, 심지어는 죽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 무엇인가. 영생의 구원이다. 그것을 위해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셨고 부활의 아침을 너머 영생의 길을 우리에게 열어 놓으셨다. 그 나라에 가서 풀릴 문제의 해답이 참 많은 게 사실이다. 그 날에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하리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후회함이 없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끝까지 믿는 것이다. 샬롬.



/최종진 목사

前 서울신학대학교 총장
前 한국기독교학회장



위 글은 교회신문 <69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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