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정착인과 순례자의 다른 차원 (上)

등록날짜 [ 2022-04-26 20:31:22 ]

이 세상이 다인 줄 여기는 자의

결말은 허무와 멸망뿐이겠지만

영원을 바라며 주를 위해 사는

성도 인생은 가치 있게 빛나

영혼의 때에도 큰 상급 얻게 돼


지난 부활주일에 구원받은 성도들이 고백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영광으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저 영광스러운 하늘나라를 준비하셨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전적인 은혜이다.


영화감독 이현승 씨의 글을 떠올려 본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긍지를 느끼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기를 쓰고 공부해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마친 후 수능 점수에 적절한 대학에 입학했고, 군 복무를 마치고 졸업하니 26세가 되었다. 2년 만에 간신히 조그만 회사에 들어가니 28세였다. 인간만이 삶의 3분의 1 정도를 교육만 받으면서 지내는 것은 아닐까.


이어 그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는다. 하고 싶은 것도 있었으나 다 참으면서 노력한 끝에 10년 만에 그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니(요사이는 턱도 없는 계산이지만), 그의 나이 36세였다. 그는 또다시 의문점이 생겼다. 자신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삶의 6분의 1을 보내는 동물이 있을까.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두 자녀가 다 대학교 졸업하기까지 뒷바라지하는 데 24년이 걸렸고, 그의 나이 60세가 되었다. 딸이 하나 있어서, 마지막으로 부부동반 세계 여행을 염두에 두고 모은 돈을 혼수 장만하는 데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딸의 결혼식장을 나온 그날 눈이 내리고 있었다. 강아지 한 마리가 눈을 맞으면서 신나게 뛰어다니는 것을 보며 문득 자신이 언젠가 들었던 욕이 생각났다고 한다. “개만도 못한 놈!” 60세의 그 눈 내리는 어느 겨울날 그는 또다시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정말 인간이 동물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영원한 상급으로 갚아 주시는 주님

참으로 사실적인 글이다. 여기에 하나만 더 말하면 결혼한 자식이라고 다 끝난 게 아니라 결혼 후에도 아들, 딸 걱정에 노심초사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결혼한 딸을 위한 A/S가 만만치 않더라! 밑반찬 가져다주랴, 손주 녀석 돌봐주랴, 때로는 다 굽은 허리로 경제적 책임까지 짊어져야 할 사연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


우리 인간들 삶의 보통의 현실이다. 다만 이것이 인간 삶의 전부라고 한다면, 분명 사람이 동물보다 나은 게 딱히 없으리라. 그러나 이 세상이 전부인 양 살아가는 ‘정착인’과는 전혀 다르게, 육신의 때를 마친 후 천국에 이를 예수 믿는 ‘순례자’는 삶의 질과 차원이 다르다. 순례자는 하루하루가 너무 감격스러워 사는 사람이다. 왜 그럴까?


이 땅에서 나그네처럼 사는 순례자는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급급하게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50~60년대 대단한 부흥사였던 이성봉 목사님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도야지(돼지) 새끼나 개새끼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 새끼로 태어난 것 감사합니다. 그중에도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시고 구원을 받게 하시니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피식하고 웃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 감사기도를 잘 곱씹어 보면 그분은 하나님께 감사할 것을 일찍 깨닫고 고백한 분이었다. 실제로 사람으로 태어나 하나님의 영원한 영생의 소망을 가진 자는 오늘이 아니라 영원을 바라보는 자이다. 즉, 영원한 섭리에서 보면, 오늘의 삶이 의미가 있고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가 깃든 삶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누구든지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받아 영생을 얻는다(요3:16).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는 섭리 안에 우리가 있다. 우리의 사는 것 자체가 이런 하나님의 은혜에 조금이나 보답하기 위해 의미 있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은혜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었으나 부끄러운 구원을 얻는 자가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쪽 편의 강도일 것이다. 그는 죽는 그 순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천국에 갔기 때문이다. 그는 이 세상에 있을 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죽음 직전에 구원받은 자이다. 그래서 그는 불에서 막 끄집어낸 것 같은 부끄러운 모습일 것이다.


구원은 분명 예수님을 믿음으로 주어지지만, 상급은 구원받은 자가 감사해서, 황송해서, 또 하나님의 은혜로 충성하고 섬기는 것인데도 하나님은 그것을 기쁘게 보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상급으로 갚아 주신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뒤늦게 알게 될 때 그 사랑에 정말 감격할 것이다. 나 또한 고등학생 때 구원받은 이후 주님의 은혜에 감격해 이모저모 충성하곤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주를 위해 감사해 충성한 일들이 저 천국에 영원한 상급을 쌓아 놓는 일일 줄이야. <계속>



/최종진 목사
前 서울신학대학교 총장
前 한국기독교학회장



위 글은 교회신문 <74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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