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정착인과 순례자의 다른 차원 (下)

등록날짜 [ 2022-05-06 08:19:50 ]

이 세상이 다인 줄 여기는 자의

결말은 허무와 멸망뿐이겠지만

영원을 바라며 주를 위해 사는

성도 인생은 가치 있게 빛나

영혼의 때에도 큰 상급 얻게 돼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었으나 부끄러운 구원을 얻는 자가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쪽의 강도일 것이다. 그는 죽는 그 순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천국에 갔기 때문이다. 그는 이 세상에 있을 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죽음 직전에 구원받은 자이다. 그래서 그는 불에서 막 끄집어낸 것 같은 부끄러운 모습일 것이다.


구원은 분명 예수님을 믿음으로 주어지지만, 상급은 구원받은 자가 감사해서, 황송해서 충성한 자에게 주어진다. 그 충성한 일 역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한 것인데도 하나님은 그것을 기쁘게 보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상급으로 갚아 주신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뒤늦게 알게 될 때 그 사랑에 정말 감격할 것이다.


거듭난 자 누구나 주님 사랑 샘솟아

나 또한 고등학생 때 구원받은 이후 주님의 은혜에 감격해 이모저모 충성하곤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주를 위해 감사해 충성한 일들이 저 천국에 영원한 상급을 쌓아 놓는 일일 줄이야.


대전고등학교 2학년 초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은혜를 받고 나니, 교회 이모저모에 관심이 생기고 주님 일에도 마음 쏟아 충성하고 싶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의 관심도 절로 생겨났다. 새벽예배를 마친 후 나만 남게 되면, 성전 이곳저곳을 청소했다. 당시 예배당은 의자가 아니라 마루로 되어 있었다. 겨울에도 찬물에 걸레를 빨아 깨끗이 바닥을 닦고, 변소를 청소하고, 눈이 오면 교회로 달려가 교회 마당을 말끔히 쓸기도 했다. 목사님을 돕는다며 목사님 아들들 공부를 도와주기도 했다.


당시 대전에는 오래된 큰 다리가 있어 그 밑에 거지들이 떼로 모여살고 있었다. 나는 이런 빈민촌에 관심이 전혀 없던 자였다.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니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그래서 내게 있는 옷이나 용돈을 모아서 토요일 오후에 그 다리 밑, 거지들 사는 곳에 가서 함께 생활하면서 돕기도 하고 예수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자주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지금 기억으로는 거지들을 돕고 돌아올 때 엄청난 기쁨과 환희를 경험하며 내 발걸음은 너무나 가볍고 구름 위를 걷는 듯했다.


또 저녁이면 전도지를 들고 하숙집 주위를 쭉 돌면서 전도하고 돌아와 공부하곤 했다. 당시는 프린터가 없던 시절이라서, 등사기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등 성경 말씀의 전도 문구를 찍어내 골목 곳곳에 붙이고 전도하는 데 열심이었다. 학교에서 마음이 가는 친구들에게도 전도하려고 애썼다. 그 같은 일은 예수님을 내 구주로 영접한 누구나에게 나타나는 일이었다. 나라고 특별한 게 아니었다.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그런 후에 방학이 되면 아버님이 목회하고 계신 시골 교회로 내려갔다. 그 교회는 엄청 부흥하고, 깊이 있게 기도하는 성도들이 많았다. 기도하는 분들 중에는 하늘나라에 영이 갔다 온 경험을 한 분들도 있었다. 그때 그 모습을 직접 보고 정말 신기했다. 바울 사도가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후12:2)라고 고백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기도를 많이 한 분들 중에 한 분이 나에게 “하늘나라에 가서 보니 네 상급이 많더라”라며, 대전에서 내가 교회를 청소한 일이며 어려운 이들을 섬기고 전도한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본 것처럼 술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전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내가 행한 일들을 본 것처럼 그대로 구체적으로 말해서 참으로 놀라웠고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 그분의 말을 듣고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자연스럽게 한 지극히 작은 모든 일이 하늘나라에 상급으로 쌓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10:42) 하신 주님의 말씀이 기억났다.


죽음은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으로 주님이 열어 놓으신 그 영광된 세계로 순례자가 이사하는 날이다. 참으로 멋있을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허무의 아들딸들이 아니라 저 하늘나라의 영광의 날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오늘을 살아가게 된다. 천국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최종진 목사

前 서울신학대학교 총장

前 한국기독교학회장


위 글은 교회신문 <747호> 기사입니다.

관련뉴스
  • [행복칼럼] 정착인과 순례자의 다른 차원 (上)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