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해방으로 가는 길

등록날짜 [ 2022-07-20 11:19:14 ]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전히 육신에 매여 산 것처럼

예수 보혈로 구원받은 우리도

죄 이기지 못하는 연약함 있어

진정한 해방으로 가려면 매일

성령의 도움으로 나아가야 해



구원의 다른 말은 해방이다. 죄 아래 살던 인류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상태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은, 죄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러나 죄로부터 해방된 인간이 언제나 거룩하고 완전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라는 바울의 선언이 위로가 되지만, 죄 이기기를 실패하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무엇이 문제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해방의 그 처음 이야기가 나오는 출애굽 사건은 답이 된다.


참 해방을 맞은 언약 백성

애굽의 억압 속에 있던 이스라엘은 모세의 인도로 바로의 지배에서 해방되었다. 출애굽기에는 이 해방 과정이 매우 드라마틱하게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을 통해서 강퍅한 바로의 마음을 흔드셨고, 이스라엘은 마침내 홍해를 건넘으로써 바로에게서 벗어났다. 이스라엘을 고통 속에 묶어 두었던 땅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이것은 죄에서 해방이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그러나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은 여정을 멈추지 않고 시내산으로 계속 가야 했다.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죄에서 해방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필요했고, 그것은 시내산에서 비로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애굽에서 나왔을 때, 그들은 정체불명의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자손과 온갖 잡족들이 모여서 애굽을 빠져나오기에 급급했을 뿐이다(출12:38). 그렇게 맞이한 그들의 해방은 원망으로 가득 찼다. 그들은 먹을 것이 없으면 불평하고, 마실 것이 없으면 화를 냈다. 그들은 광야의 고단한 삶을 후회하면서, 차라리 바로의 통치 아래 있던 때가 더 좋았다고 회상했다. 먹고 마시는 것을 위해서라면 흔쾌히 고통과 억압의 땅으로 다시 들어가고픈 그들의 불평에 해방의 기쁨은 없었다. 애굽이라는 공간에서 탈출한 것만으로는 진정한 해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했다. 그들의 해방을 완성하는 것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계약을 통해서 새롭게 거듭나는 삶 자체이다. 진정한 해방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는 계약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로 언약하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하나님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받아들일 때 그들의 진정한 해방은 시작된다. 고대 근동의 다른 신들은 풍요와 다산의 신들이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위하여 만들어진 신들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신들과 자신을 구별하며, 그들 자신을 위하여 그런 신들을 따르지 말라고 명령한다. 해방을 위한 첫 번째 강령이다. 천지를 지으시고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의 해방은 땅의 풍족함에 머무르지 않도록 한다. 그것은 우리의 욕구와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한다. 다른 신들의 형상을 만들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는 그 시내산의 언약을 기억하는 삶이 해방이다.


성령께 붙들린 삶이 곧 해방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어도, 광야에서 버려진 것 같아도, 당장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도, 그 모든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나는 삶이 해방이다. 지금 없는 것을 앞으로 가질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는 삶이 해방이다.


바울은 이 해방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성령이라고 말한다. 성령의 도우심은, 우리가 매순간 탐욕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바라보며 시내산의 언약을 기억하게 한다. 홍해도 건넜고, 메추라기도 먹었고, 맛나의 풍성함도 누렸지만, 진정한 해방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던 삶을 돌아보며 다시 묻게 된다. 나의 욕망을 위해서 만들었던 다른 신들이 여전히 내 발목을 잡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의 기쁨을 내일까지 이어 가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것을 보면 인간은 참으로 연약하다. 그러나 오늘도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성령의 도움으로 하루하루 진정한 해방으로 나아간다.



/김호경 교수

서울장신대 신학과


위 글은 교회신문 <75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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