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2-12-26 17:00:42 ]
사람들은 보통 50대에 50km 속도로 세월이 흘러가고, 60대에는 60km 속도로 달려가고 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칠십 대 중반을 넘긴 나는 77km로 달리고 있다. 세월은 가면 갈수록 가속화(加速化)하는가 보다. 왜 이리 시간이, 세월이 빨라지는 것일까. 거기서 나는 우리 예수 믿는 자들에게 이 빠른 시간은 저 천국이 너무나 아름답고, 찬란하고, 평화롭고, 영광스러운 곳이기에 빨리 가고 싶어서 그렇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천국이 가깝고, 그곳으로 이사 가야 한다는 기대감과 소망이 절실해지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다가올 그 날을 부지런히 준비하며
세월이 가는 것을 빠르게 느끼면서 동시에 주님을 만나면 내놓을 게 없는 부족하고, 불충하고, 게을렀던 지난날이 후회스럽고 죄송하여 주님 앞에 서기 전, 하나님 나라와 주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해 한 번 더 기회를 주십사 하는 기도가 더 간절해진다. 주님을 만나게 될 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칭찬과 격려를 받고 싶은 심정이 간절해지는, 나의 말년의 조급함이 간절하다는 얘기이다. 아니 절규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더 충성하고, 주님의 뜻을 이룰 말미를 달라고 매달리고 싶어서 그렇다.
지난날에 나는 나를 내세우고, 내 자랑도 많았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쓰임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교만하고, 불충한 지난날이 한스럽다. 솔직히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서운하게 해 드린 일도 많았고, 주님을 외면하기도 했고, 성령님을 근심되게 하면서 수많은 세월을 흘려보냈다. 그러니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에서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게 죄송하고 부끄러울 일이 될 듯하다. 항상 그 날을 생각하고, 소망하기도 하며, 준비하면서 산다고 다짐했는데도 자꾸만 미루고, 게으름 피고, 다음으로 넘기다 보니 어느덧 이 77km 나이에 들어서 있다.
그래서 나의 남은 생애가 말로 다 할 수 없이 소중하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내일보다 글피가 더 급박하게 느껴져 기도하게 된다. 하나님 나라와 뜻이 이뤄지고,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완성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일에 내 기도의 삶과 사명 그리고 충성이 쓰임받고 그 한 축을 담당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래서 이 글을 읽은 분들에게도 지금, 이 시간들, 순간순간들, 현재를 값지게 살아가라는 당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나처럼 후회하지 않도록, 인생의 시간을 더 달라고 투정부리지 않도록 살아가라는 당부를 전한다.
죽음 너머 영화로운 그곳
나는 이제 영광스러운 하늘의 보좌에 계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더욱 꿇으려 한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마18:18)고 하셨으므로, 지금 내 신앙의 옷깃을 여미며 그곳을 향해 기도를 올려 드린다. 그곳에서 주님이 우주와 인간 삶을 주관하고 통치하시기에, 거기서 결재가 나면 된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일을 다 마치고 천수(天壽)를 다한 후 이 땅을 떠나 하늘나라로 이사 갈 때, 우리는 막연한 죽음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영광스럽고 찬란한 하나님이 준비하신 최선, 최대, 최고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다. 태평양 건너에 미국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저 천국, 그 하나님 나라도 확실하고 분명한 그곳에 있다. 우리가 언젠가 죽어 가야 하는 곳이 바로 이 하늘 너머의 영화로운 나라이다.
그래서 지난날 제수씨가 좀 이르게 운명(殞命)하던 바로 그 시간에도 그녀의 아들, 남편, 어머니가 통곡하는 자리에서 나는 그의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배웅하면서 ‘잘 가세요. 주님의 품으로, 천국으로! 언제가 그곳에서 만날 거예요. 남편 되는 내 동생을 잘 돌볼 테니 염려 말고 먼저 가시라’는 마음의 언어를 주고받으며 “It’s time to say goodbye(안녕히 가시길)”라며 보냈다.
우리도 그 날이 오면, 그 영화로운 나라에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 그리고 수많은 천사와 앞서간 성도들의 환영과 갈채 속에 영광스럽게 입성할 것이다. 그래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계14:13)라고 하셨고,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시116:15)라고 했다.
우리 성도들은 죽음 앞에 의연하게 인생의 모든 무거움을 내려놓고, 영광스러운 이사를 가는 이별로 떠날 수 있다. 어느 때건 우리는 “주여 나의 영혼을 받아 주시고 주님의 품안에 안아 주소서!” 하며 갈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우리는 반드시 가게 되어 있는 그곳을 황홀하게 기대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세월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고, 속히 날아가는 것이다.
/최종진 목사
前 서울신학대학교 총장
前 한국기독교학회장
위 글은 교회신문 <78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