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 (6)

등록날짜 [ 2023-01-18 10:04:59 ]

2023년이 주님의 은혜 안에 시작되었습니다. 예수가족과 연세가족 모두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필자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궁극적 소망인 천국을 가리킬 뿐 아니라, 성령님의 강력한 치유와 회복과 부흥의 활동이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도 역동적으로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가버나움 회당의 설교 사건(막1:21~28, 눅4:31~37)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적 권능이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났는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날 성도에게도 나타나는 성령의 권능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속에 하나님의 권능이 역사하고 있었다는 것은 먼저 그의 가르치는 사역에서부터 나타났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공생애가 그의 중심 사역지인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고 제시했고, 누가는 예수님이 그의 자라나신 곳 회당에서 설교하신 사건을 첫 공적 사역으로 제시한 후(눅4:16~30), 가버나움 회당에서 설교하신 사건을 예수님의 두 번째 공적 사역으로 제시했습니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가르치셨을 때 그의 교훈을 들은 사람들이 크게 놀랐습니다. 그들이 놀란 이유에 대해 마가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이라”(막1:22)라며 서기관들과 비교되는 것으로서 예수님의 권위를 부각한 반면, 누가는 “그의 말씀이 권위가 있었음이라”(눅4:32)고 말하여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를 구체적으로 부각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회중의 영혼에 감동과 충격과 도전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는 인간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더러운 귀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예수님이 그 귀신을 쫓아내는 극적인 사건을 통해 표현됩니다.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소리를 지르면서 예수님의 설교를 방해했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입니다”(막1:24). 그 귀신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고 그가 오신 목적도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과 상관하지 않고 예수님의 낯을 피하려고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 귀신을 향해 꾸짖어 말씀하셨습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막1:25). 그 귀신을 향한 예수님의 명령은 단호하고 분명했습니다. 그 귀신은 그 사람 안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그를 지배하려고 했지만 예수님의 책망하시는 명령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막1:26).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가 회중의 영혼 속을 뚫고 들어가 충격과 감동과 도전을 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결과 사람의 영혼을 지배하고 있는 ‘더러운 영(귀신)’의 정체가 드러났고, 그 더러운 영(귀신)을 권능의 말씀으로 쫓아내심으로써 인간을 사단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그의 권능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는 권위와 능력을 목격한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마가는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막1:27)라고 말했습니다. 마가는 율법에 관하여 그들의 조상들이 만든 세세하고 지엽적인 해석과 적용에 관해 설교하면서 복종을 강요하는 서기관들과 대조되는 것으로서 인간의 영혼에 감동과 충격과 도전을 줄 뿐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사로잡고 지배하던 ‘악한 영, 더러운 영, 흑암의 영’이라고 부르는 사단 마귀의 수하들을 권위의 명령으로 쫓아낸 예수님의 ‘권위 있는 새 교훈’의 국면을 부각했습니다.


누가 역시 “이 어떠한 말씀인가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령한즉 그들이 (쫓겨) 나가는도다”(눅4:36)라며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들을 명하여 쫓아내는 예수님의 ‘말씀의 권능’을 부각했습니다. 마태는 가버나움 회당 설교 사건을 전하지 않았으나, 예수님이 산상강화의 긴 말씀을 마치셨을 때 무리가 그의 교훈에 크게 놀랐다면서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7:29)고 말하여 서기관들과 대조시킨 마가의 입장을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에 담긴 ‘권능’의 국면은 그의 치유 사역에서 더 선명하게 제시되었습니다. 혈루병 여인을 낫게 한 사건에서 그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에 손을 대어 치유받았을 때, 마가는 예수님이 “그의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는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막5:30)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능력’이 자신에게서 나간 것을 스스로 알고 계셨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반면에 누가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내가 앎이니라”(눅8:46)고 말하여, 치유의 능력이 예수님에게서 나가 그 여인을 낫게 했다는 것을 예수님 자신이 이미 알고 계셨다는 것을 예수님 자신의 말씀을 통해 직접적으로 부각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치유 사역은 그가 소유하신 치유의 능력에 의해 일어난 사역이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이런 치유의 능력을 강조하는 관점을 갖고 중풍병자 치유 사역에서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눅5:17)는 구절을 추가했고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갖고 집으로 가라”(눅5:24)고 말씀하셨을 때 중풍병자에게 즉시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기록했습니다(눅5:25).


성령의 권능을 통해 이뤄지는 하나님의 구원 활동이 예수님이 행하신 사역을 통해 생생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권능이 성도님들 삶의 현장에서 성령의 권능을 통해 지금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광수 총장 직무대행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위 글은 교회신문 <783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