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3-09-09 13:21:44 ]
예수께서는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서 ‘믿음’ 강조
아무리 극한 상황에 있더라도
믿음 가질 것을 말씀하시면서
믿음으로 구원받을 것을 당부
마가복음 강해⑬
마가복음은 엄청난 박해에 직면해 있던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도록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아무리 극한 상황에 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새로운 소망을 가질 수 있고, 변치 않는 믿음을 가지면 어떠한 문제라도 해결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며 ‘믿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마가복음 5장에서는 예수께서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시는 길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받던 여인을 고쳐 주는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러한 성경 속 구조는 원래 전하려 한 메시지를 더 분명하게 전달하려는 데 목적을 둡니다.
예수께서 여인의 혈루병을 고쳐 주신 후 하신 말씀이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막5:34)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여인이 구원받은 이유가 바로 믿음 때문이었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예수께서 혈루증을 고침받은 여인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 다른 편에서는 회당장의 집에서 급한 전갈이 왔습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막5:35).
당시 사람들은 예수께서 죽기 직전에 놓인 환자라도 살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회당장 야이로도 죽음을 앞에 둔 딸아이가 살 수 있다고 소망하며 예수께 나왔습니다. 회당장에게 그의 딸의 죽음을 알리러 온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살아 있을 때는 사람을 고칠 수 있어도 일단 죽고 나면 생명을 되돌리지 못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상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막5:36). 예수는 모든 사람의 상식을 깨고 회당장의 딸을 다시 살리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믿음만 있다면 죽은 딸도 살아날 수 있으니 “믿기만 하라”고 당부하며 또 다시 믿음을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데리고 야이로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갔더니 야이로의 딸이 죽어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소란스러운 모습입니다. 예수께서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말씀하시자 사람들이 비웃습니다(막5:40).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창조주로서 인간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십니다(신32:39).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잠든 자를 깨우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죽은 자를 향해 잔다고 말씀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때에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부활의 형태가 신앙 유무에 따라 다를 뿐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의 부활로 나아오지만, 신앙이 없는 자는 영원한 심판의 부활로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요5:29). 영원한 심판의 부활은 영원한 죽음과 영원한 멸망을 의미하며 영영한 지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다 내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한 자들을 데리고 아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 즉 “소녀야 일어나라”라고 하십니다.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사람들이 크게 놀라고,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하도록 많이 경계하십니다(막5:43). 예수님은 회개의 복음을 전파하러 오셨습니다(막1:38). 사람들이 불쌍해서 병을 고쳐 주기는 했으나, 짧은 공생애 기간에 병 고치느라 복음을 전하지 못하면 안 되니까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라고 경계하신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예수께서 말씀하고 싶으신 것은 “내가 죽은 자를 살렸다”가 아니라, “믿기만 하라. 믿음이 너를 구원할 것”이라며 구원은 믿음을 통해 얻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행동에 혈루증 앓던 여자가 나음을 입었고, 예수께서는 믿기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면서 죽은 소녀를 살리셨습니다. 예수께서 구원을 위해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단 하나, 바로 믿음입니다.
거라사 지방에서는 사람들이 믿음이 없었기에 돼지 떼 수천 마리가 죽는 것을 보고 걱정과 두려움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배척했고 예수께서는 그 지역을 떠나셨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에 합당하게 구원을 이루는 분이라는 것을 마가복음 5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지 않고 배척하면 예수님은 떠나시지만, 예수께서는 믿으라고 말씀하셨고 그 믿음에 응답하셔서 구원을 이뤄 주십니다. 마가복음 5장 속 인물들은 병에서 자유함을 얻고 더 나아가 죽은 자가 살아나 구원을 얻었지만, 우리에게는 지옥 갈 자가 천국 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원한 지옥과 저주와 멸망에서의 구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옥 이야기는 하지 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이해하려면 지옥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우리 죄를 짊어지면 십자가에서 죽을 만큼 죄가 무섭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죄와 사망과 지옥이라는 절망적인 처지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아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내놓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이고, 그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신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지옥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습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라고 했습니다. 인지적 믿음이 아니라 마가복음 1장의 문둥병자처럼 ‘나는 내 절망적인 문제를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불쌍한 자’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면 나를 고쳐 주실 수 있다’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격적 선택을 하도록 충분히 수용할 수밖에 없는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가 어떤 분인지를 몰라 두려워서 예수를 배척하는 사람이냐, 아니면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두려운 문제를 해결하실 분이라고 믿고 수용하여 구원을 받는 사람이냐.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81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