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곤 목사 칼럼] 대속물로서 섬기러 오신 예수

등록날짜 [ 2024-04-15 10:59:56 ]

예수님께서 영생을 주기까지

나를 죽도록 섬기신 것처럼

나도 죄 아래 사는 사람들이

영생 얻도록 종 되어 섬겨야


마가복음 강해(28)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 예고는 모두 세 차례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예고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직후에 하셨고(막8:27~31), 변화산 사건 이후에도 예고하셨습니다(막9:30~32).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마지막 수난 예고를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이 고난받고 죽으러 가는 길임을 잘 아시지만 걸음을 재촉하며 앞장서서 가셨습니다. 반면 제자들은 놀라고 좇는 자들은 두려워했습니다(막10:32). 그들이 놀라고 두려워한 이유는 목적지가 예루살렘이고 그곳에서 죽임을 당한다고 예수님이 일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후 사흘 만에 부활한다고 약속하셨지만, 이를 믿지 못하고 예수께서 죽는다는 사실에만 집착하여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성도 중에도 두려움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인생의 실패나 세상의 박해와 죽음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주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라고 하셨으니 예수 믿는 우리도 담대해야 합니다.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재차 예고하십니다. 자신이 받을 수난에 대하여 이전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막10:33~34). 이처럼 예수께서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거듭하여 예고하신 이유는 십자가 대속과 부활 사건이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께서 유대의 왕이 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나아와 원하는 바가 있으니 꼭 들어 달라고 말합니다(막10:35). 자신들이 생각하는 영광, 즉 유대의 왕이 되실 때 주의 좌우편에 앉게 해 달라는 부탁입니다.


제자들의 말을 들은 예수께서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라며 탄식하십니다. 다른 제자들이 분히 여기며 화를 낸 것을 보면 다른 제자들도 같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다른 제자들 모두 예수님이 유대의 정치적인 왕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철없는 소원을 고한 야고보와 요한에게 당신이 겪을 고난을 그들 역시 받을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막10:38).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고 그 고난을 통과해야만 주님이 주시는 영광에도 참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마13:3~23) 중에 흙이 얇은 돌밭과 같은 사람이 나옵니다.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입니다(마13:20~21). 이런 사람들은 주님의 영광만 바라다가 주님의 고난은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잔과 침례에 참여할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포박당하실 때 목숨을 부지하려고 모두 도주했습니다(막14:50).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그러나 주님의 부활과 승천을 목격하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고 나서 제자들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사도로 바뀌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사도 중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행12:1~2). 사도 요한은 100세가 넘도록 로마 황제들에게 온갖 박해를 받았기에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계1:9)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10:43~44). 제자들은 예수님이 추앙받고 영광받는 것만 보고 좇았으나, 예수께서는 영광의 자리에 있으려면 오히려 섬겨야 하고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때의 섬김은 낮은 자리에서 겸손히 섬기라는 인본주의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알아 그 영혼이 죄 사함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구원받도록 섬기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라고 말씀하십니다. ‘대속물(代贖物)’에서 대속(redemption)은 ‘대신하여 갚아 주다’, ‘값을 주고 되찾아 주다’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인간의 죄를 사하려고 대속물로서 섬긴다, 즉 ‘대신 죽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너희가 기대하는 이스라엘 왕국을 이 땅에 세우고 왕이 되려고 온 것이 아니다. 너희들의 죄를 해결하고 영생을 주기 위해 대속물로서 죽으러 온 거야. 너희들도 그런 나를 따라서 섬기는 자, 종이 된다면 영생을 얻고 또 내 좌우편에 앉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마가복음 10장에서는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지만 마음을 다해 따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재물이 많은 사람도, 제자들도 예수님의 심정을 알지 못하고 좇아오지도 못하는 모습에 예수께서 탄식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탄식하지 않도록 우리의 신앙생활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려고 예수께서 나를 섬기신 것처럼, 나도 사람들이 영생을 얻도록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예수님처럼 대신 죽어 줄 수 없지만,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까지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그것을 경험시켜 줘야 합니다. 지옥 갈 영혼을 살려 구원받도록 하는 것이 이 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기업이요, 예수님의 생애를 따라가는 일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84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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