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4-06-29 17:45:18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 주고자
한 것은 죄 문제 해결해 주는 것
어떠한 불가능 한 일도 시행하실
권세 있는 주께 죄 사함 간구해야
마가복음 강해(32)
마가복음 11~15장은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한 주인 고난주간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 가운데 11장 20절부터 14장 11절까지는 고난주간의 셋째 날인 화요일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월요일 아침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막11:12~14). 화요일 아침,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다시 올라가는 중에 보니 예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전날 일이 생각나서 예수께 말합니다.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막11:22). 이 말씀은 “내가 이렇게 한 것은 하나님의 권세로 한 것이니, 내게 있는 ‘하나님의 권세’를 믿으라”는 뜻입니다.
또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23). 유대인들은 매우 힘든 일을 ‘산을 옮기는 일’이라고 표현했고(슥4:7; 14:4) 우리도 큰 문제를 ‘태산 같은 문제’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어떠한 큰 문제라도 믿고 의심치 않으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산을 들어서 바다에 던질 만큼이나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는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권세 있는 하나님께 내 어떤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할까?’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먹고 사는 문제입니까? 아니면 건강 문제입니까? 그런 문제들은 사람의 힘으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죄의 문제’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죄를 찾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죄의 문제를 해결 받아야 한다는 것을 감히 상상하지도 못하기에 죄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죄를 찾게 하시고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으십니다. 이 해결 불가능한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 죄를 담당하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어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고 싶으신 것이 바로 죄에서 자유케 해주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 이는 믿음이 전제된 기도의 효력을 밝히신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알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인정하여 올려 드리는 기도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그 효력이 실로 무한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정욕으로 구해도 받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성경에 정욕으로 구한 것은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약4:3).
이어 예수께서 우리가 믿음으로 구해서 응답받아야 할 기도 내용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서서 기도할 때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막11:25). 기도할 때 이웃과 불편한 사이라면 우선 그를 용서해야 기도 응답을 받는다는 교훈입니다. 주님은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기 전에 형제와 화목하라고 당부하셨고(마5:23~24), 주기도문에서도 하나님께 용서받으려면 다른 사람을 먼저 용서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마6:15). 우리가 정말 기도해야 할 문제는 ‘내가 죄 사함받는 일’이므로 서로의 죄를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지신 죄 사함의 권세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다니실 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누가 당신께 이런 권세를 주었느냐?”며 예수께 따졌습니다(막11:27~28).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행한 일련의 행위들은 종교 지도자들의 권위를 위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제거하고자 계획을 세웠고, 만일 예수께서 자신의 권세가 하나님에게서 나왔다고 하면 신성 모독으로 고소하고 만일 적절히 대답하지 못하면 이를 지켜보는 백성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어 예수님의 권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악한 계교를 잘 알고 계신 예수께서 오히려 다음과 같이 질문하십니다. “요한의 침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막11:30). 침례 요한은 당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였습니다. 그래서 온 유대 사람들과 이방인들까지 와서 그에게 회개의 침례를 받았습니다. 종교 지도자들도 침례를 받았으므로 요한의 권세가 하늘에서 온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종교 지도자들이 요한의 침례가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 속에서 한 일이라고 대답하면 그를 믿지 않은 자신들의 죄악을 인정하는 셈이 됩니다. 또 사람에게서 난 것이라고 말하면 침례 요한을 하나님의 사자로 믿는 백성들에게 지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정죄의 올무에 걸려고 시험하던 자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위선만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이어 예수께서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십니다(막11:33). 그러나 실상은 “너희가 요한의 침례가 하늘로서 온 것을 아는 것처럼, 그가 나를 하나님이 보낸 그리스도로 소개했지 않았느냐.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로 이 일을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거칠 것 없이 행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계속 보여줍니다. 그 하나님의 권세로 예수께서 우리에게 해주고 싶어 하신 일은 ‘죄 사함’입니다. 죄와 저주와 참혹한 지옥 형벌에서 나를 구원하고 싶으신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진실한지 바로 알아 하나님의 심정에 화답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85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