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곤 목사 칼럼] 예수님의 답변

등록날짜 [ 2024-07-11 02:51:21 ]

유대 지도자들 간교한 질문 던지나

예수님은 하늘의 지혜로 답변하며

회개하라는 심판의 메시지 전달해


마가복음 강해(33)

마가복음 12장은 “예수께서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라며 예수님의 포도원 비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2장 1절의 ‘저희’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을 가리킵니다. 11장 마지막 부분에서 그들이 예수님의 권위에 관해 질문을 던지자 예수님께서 포도원 비유를 들어 말씀하고 계신 상황입니다.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은 헤롯에게 재정적 지원을 받아서 성전을 짓고, 자신들의 권세를 배경 삼아 성전 안 장사꾼과 환전상에게서 이익을 취했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죄 사함받는 은혜를 누려야 될 그들이 오히려 죄를 양산해 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실상을 비유로 말씀합니다.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을 만들고 포도나무를 심고 울타리를 두르고 모든 기구를 예비했으며 망대까지 세운 후 농부들에게 세를 주었습니다(막12:1). 포도 농사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갖춘 후 농부들에게 임대해 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모든 은혜를 베푸셨다는 의미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정한 때가 되자 농부들에게 소작료를 받으려고 종을 보냅니다(막12:2). 그러나 주인의 은혜에 감사하며 세를 바쳐야 할 농부들은 주인이 보낸 종을 번번이 때리고 능욕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합니다.


포도원 주인이 보낸 종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학대하고 죽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아합왕 때는 선지자들을 진멸하는 정책을 펼쳤고(왕상18:13), 다른 왕들도 선지자들을 때리고 투옥하고 죽이기를 일삼았습니다(왕상22:27, 렘20:2, 렘26:20~23). 또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그들에게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요구한 침례 요한까지 죽였습니다(마14:3~11).


주인은 최후에 자기 아들을 보냈습니다. 농부들이 아들의 권위는 인정하고 그를 공경할 줄로 생각한 것입니다. 자기 종들을 능욕하고 죽인 농부들에게 오랫동안 인내하고 더 나아가 그 아들까지 보낸 포도원 주인의 자비는 이스라엘로 상징되는 모든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를 보여 줍니다. 포도원 주인이 아들을 보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을 의미하지만(요3:16), 농부들은 포도원의 상속자인 아들만 죽이면 자신들이 포도원을 차지하겠다고 생각하여 아들을 죽이고 포도원 밖에 내어 던집니다(막12:7~8).


예수님은 그들에게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막12:9). 이는 답을 듣고자 건넨 질문이 아니라 주인의 행동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악한 농부들을 반드시 진멸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동안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이제 하나님의 아들마저 배척하고 죽이려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내린 준엄한 경고입니다.


주님의 책망에 귀를 닫은 유대 지도자들

예수님은 이어서 시편 118편 22~23절을 인용하십니다.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막12:10~11). 모퉁이 돌은 건물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초석입니다. 농부들이 죽인 주인의 아들이 너희가 ‘버린 돌’이었는데, 그 돌이 건물을 지탱하는 ‘모퉁이 돌’이요, 세상을 지탱하고 구원할 ‘그리스도’가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은 자기들에게 하신 말씀임을 알아듣고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나,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어 저희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책잡으려고 바리새인과 헤롯당을 예수께 보냅니다. 반로마 성향인 바리새인과 친로마 성향인 헤롯당이 정치적으로는 다른 노선이지만 예수님을 공동의 적으로 여기고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가이사(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막12:14)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로마 제국에 반기를 든 적이 없고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며 복음만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자신들을 로마에서 건져 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이 ‘세를 바치라’고 한다면 바리새인들은 “이 사람은 로마에게 충직한 사람이야. 너희들의 그리스도가 아니야”라며 예수님을 사람들과 이간질시키고, ‘세를 바치지 말라’고 한다면 헤롯당들은 로마에 반역한다며 예수를 밀고할 것입니다. 이어 예수께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고 “이 화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라고 묻습니다(막12:15~16). 데나리온은 당시 로마 전역에서 통용되던 화폐입니다. 그 화폐 앞면에는 로마의 황제 얼굴이, 뒷면에는 ‘만유의 주’라며 황제를 신격화하는 글귀가 새겨 있었습니다. 이 화폐를 쓰는 모든 사람이 주화에 새겨진 황제를 주인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하십니다(막12:17). 이 말은 “네가 신이라고 생각하는 대상에게 바쳐라”라는 뜻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이 신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이 세상의 돈과 권력을 섬기는 그들의 ‘외식’을 드러낸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책잡고자 한 자들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의 대답을 놀랍게 여기며 침묵합니다.


지금 예수님은 심판주의 권세를 가지시고 예루살렘의 유력자들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보내고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종교 지도자들은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기는커녕 도리어 자기들의 완악함을 책망하는 주님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주님의 책망을 듣습니다. 귀를 닫고 말씀에 거슬러 행한다면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 동일한 운명을 피하지 못합니다. 주님의 책망을 들을 때 즉시 회개하여 더욱 주님께 가까이 가는 참된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857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