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4-30 10:18:23 ]
삶에서 젊음으로 생기가 넘치던 시기를 가리켜 흔히 꽃다운 시절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꽃은 한 번 시들고 그늘지기 시작하면 초라하고 황폐해져 떨어지기 마련이다.
자신에게 꽃다운 시절이 있었는지, 아니면 꽃다운 그 시절에 술이나 담배, 무분별한 충동이라는 깊은 수렁에 빠져 속수무책으로 인생을 낭비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자. 만약 지난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턱없이 헝클어진 삶을 정리하고 새로이 시작하고 싶은 마음을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봤을 것이다.
우리 인생 대부분이 그러하듯 꿈을 향해 달려가다가 좌절하거나 낙담하기도 하며, 환경에 치여 삶의 소망이 무너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낙담하여 자신의 배경을 탓하고 인생을 저주하기도 한다.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반복되는 계절 속에서 처음에 품었던 꿈, 희망, 열정을 빼앗긴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우리 형은 미술의 달인으로 통했다. 그림을 썩 잘 그리던 형은 틈틈이 용돈을 모아둔 저금통을 깨서 조립완구를 사거나, 친구들이 버린 장난감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 어머니의 볼멘소리를 피해 모아둔 조립완구들은 어느새 벽장 속 물탱크 뒤편을 한가득 차지했다.
버려진 완구를 재생하는 능력이 참 좋았던 형은, 늦은 밤 어머니가 잠에서 깨실까 봐 조심스러워하면서도 환한 미소로 매일같이 벽장을 열어 보았다. 로봇시리즈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 세계를 위기에서 구한 미국 군인과 군용 장비들이 형의 미술적 감각을 통해 과거와 현재 사이를 넘나들며 재현되었다.
형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잊지 못할 사건이 발생했다. 공부에 전념해 대학에 진학하길 원하신 어머니와 미술 공부를 원하는 형의 갈등이 커졌고 급기야 어머니는 벽장 속에 있던 완구들을 모두 꺼내어 망치로 산산조각 내버렸다. 공무원 박봉으로 살아가는 어려운 가정형편이라 어머니는 항상 복잡한 가계부 연산에 시달리셨고, 그 복잡한 계산 속에서 ‘우리 형편에 미술은 무슨 미술…’이라는 함수관계가 나온 것이 분명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 형은 다시 붓을 들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형과 나는 학부모가 돼 그 시절 우리만큼 자란 자녀를 키우고 있다. 이제 풍요로운 세상을 만나 미술이든 음악이든 어렵지 않게 아이들을 가르친다. 커가는 아이를 보며 아이에게 맞는 적성이나 진로를 놓고 기도할 때마다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그러나 세상은 풍요로워졌는데 과연 아이들은 자신의 꿈과 비전을 잘 실천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부모라면 자녀의 꿈과 재능을 길러주는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하지만 부모가 겪은 아픔과 아쉬움이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녀에게 세속적인 목적과 즐거움을 찾게 한다면, 그 자녀 역시 불안과 초조 속에 인생을 빼앗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배경이 되어 주길 원하신다. 그리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 주셨다. 우리 영혼 속에 생명 주신 그 사랑에 감사하며, 우리의 재능과 소망을 주를 위해 쓰는 것으로 삶의 목적이 바로 설 때에 비로소 모든 환경이 열리며 삶의 부유함이 넘치리라 믿는다.
하나님이 배경 되는 삶, 영혼의 때를 위하여 값진 인생을 사는 부모와 자녀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규식(요셉부 교사)
위 글은 교회신문 <33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