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9-07 21:19:46 ]
몇 년 전 저녁,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여기 ○○○경찰서인데 이병옥 씨 맞죠?”
“네, 접니다.”
“형님이 ○○에서 갑자기 쓰러져 사망하셨습니다. ○○ 병원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사건이 나에게 닥친 것이다. 한동안 넋을 잃고 슬픔과 애통함, 그리고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착각 속에서 모든 게 멈춰버린 것 같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여기저기에 연락을 취한 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간절히 기도하는데, 점점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다.
형은 천국의 주님 품에 안겼다는 안도감으로 나의 불안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평안해졌다. 수년 전 형은 나와 함께 주님을 영접하고 결혼 후에도 계속 믿음을 지키며 신앙생활을 해왔다. 이 땅에서 살아온 그의 삶은 고생의 연속이었지만 이제 천국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행복을 누릴 형을 생각하니 안도가 되었다. 영안실에 누워있는 형은 잠들어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보였다. 눈물은 났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수년이 흘러 2010년 올해 봄. 외숙모께서 위암 판정을 받고, 당사자 본인은 모른 채 가족들끼리만 비밀로 악성 위궤양으로 속이고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친척들에게도 이 사실은 절대 비밀로 하라고 들었다. 마침 교회에서는 ‘전 교인 50일 작정 기도회’ 기간 중이라 그 가정과 외숙모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토요일엔 시간을 내어 외삼촌 댁을 방문했다. 잠시 낮잠을 주무셨다는 외숙모는 암환자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해 보이셨다. 우리는 병명을 모르는 척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잠시 후 아내는 숙모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숙모는 듣는 둥 마는 둥 혼자 쉬고 싶은 듯하여 아내의 전도를 더 협조하지 못하고, 오히려 오늘은 숙모가 피곤해하는 거 같으니까 나중에 다시 방문하자고 서둘러 나왔다.
다음을 기약하고 그날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척이나 무거웠다. 이후 토요일마다 우리 부부는 각자 노방전도에 시간을 보내고 2주가 지나 총동원전도주일에도 외숙모를 초청하지 못했다. 다음 주에 가서 다시 복음 전하면서 초청하자는 마음으로 스스로 위안했다.
그러나 총동원전도주일이 끝나고 이튿날 월요일 새벽,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왔다.
‘외숙모 오늘 새벽 사망. ○○장례식장’
주님께서는 마지막까지 나에게 그분을 전도하도록 인내하고 인내하셨는데, 나의 불순종으로 결국 한 사람을 구원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으며 살아야 할 숙모의 처지가 너무 불쌍하면서도 나를 얼마나 원망할까 싶어 내내 깊은 슬픔이 몰려왔다. 장례식장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불순종의 눈물은 유가족의 슬픔만큼이나 비통하고도 아팠다.
영혼을 구원하는 데는 상대방의 처지와 형편을 볼 여유가 없다. 아무 일 없을 거라 안일하게 판단하고 ‘내일 복음 전하지 뭐’ 했다가 오늘 밤에 마감할 운명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죽어가는 영혼의 목소리만 듣고 즉시 복음을 전하리라고 다짐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0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