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가난하지만 가난해서는 안 될 것

등록날짜 [ 2012-06-19 11:27:21 ]

부동산 경기 침체 장기화로 하우스푸어(House Poor, 집을 가진 가난한 사람)가 늘고 있다. 부동산이 호기일 때는 대출을 담보로 부동산을 구입해 재산을 늘였다. 대출이자를 내더라도 집값이 더 많이 오르고 재산가치가 오르자 많은 사람이 대출을 끼고 집을 구입하는 바람에 집값에 거품이 생겼다.

그러나 2008년 이후 미국 경제위기와 현재 유럽 재정위기, 베이비부머의 은퇴 등이 맞물려서 집 가격이 계속 하락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실수요자마저도 매매를 주저해 집값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또 집값 하락은 건설경기 위축으로 이어지고 일자리 축소와 더불어 내수침체의 한 원인이 된다.

더구나 과도한 대출을 끼고 산 집들이 이자만 내던 거치기간이 끝나면서 원금과 이자를 갚기가 어려워지자 연체율이 상승하고 주택매물이 늘어나고 있다. 하우스푸어의 현실은 집값 하락과 더불어 중산층 몰락과 은행 부실, 국가 경제 위기까지 가져올 수 있다.

또 워킹푸어(Working Poor,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정규 직원이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나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2012년 시간당 최저임금은 4580원이다. 주 5일에 10시간씩 한 달을 일한다고 해도 90만 원 정도 급여를 받으며, 세금을 빼면 실제 90만 원 미만을 받아 생활해야 한다.

더구나 소울푸어(Soul poor,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스마트폰의 발달은 스마트폰 속 세상에 사람들의 관심과 생각을 집중하게 하며, 사고는 단순하게 그리고 삶은 분주하게 만든다. 이제 재미있는 영화나 프로그램 같은 영상매체는 언제 어디서나 방영되며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스포츠가 전 세계인의 축제가 되면서 관심과 흥미를 사로잡아 사람들이 영적으로 사는 것에 싫증을 느끼게 만든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기독교인도 영적 부유함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예배가 형식이 되며 기도와 찬양이 사라지고 말씀이 단순한 교훈이 되어 영적인 갈급함을 채울 수 없는 교회와 크리스천이 되고 있다. 살기 어려운 세상에 육적인 것을 우선시하니 교회는 설 자리와 함께 복음의 영향력마저 잃어가고 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라고 말한 하박국의 고백이다.

세상 것은 아무리 가난해져도 영적인 것은 예수님만이 주시는 부유로 풍성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 안에서 죄와 저주와 질병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 땅에서의 삶이 아무것도 없이 끝난다고 할지라도 천국에서는 영원히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우리가 사는 이유요 목적이다.

 
/ 김용환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29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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