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나무가 내게 말한다

등록날짜 [ 2012-11-28 15:46:48 ]

생명을 위해 아낌없이 버리는 나무 보며
세상 소욕 버리지 못한 나 반성하게 돼

늦가을 요즘 날씨가 겨울처럼 쌀쌀하다. 그래도 여기저기 거리를 둘러보면 볼거리가 많다. 특히 형형색색으로 물든 단풍을 바라보노라면 자연의 변화가 신비롭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나무는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준다. 봄이면 푸릇푸릇 새싹을 틔워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해 주고, 여름이면 무성한 잎으로 사람들에게 그늘을 제공하며 쉼터를 마련해 주고, 가을에는 탐스러운 열매로 삶의 기쁨을 안겨 주고….

생명의 씨앗을 세상에 배출한 나무는 초겨울로 접어들면서 내년을 기약하며 한 잎 한 잎 소중한 이파리를 떨어뜨린다. 무수히도 많던 나뭇잎을 한 잎 한 잎 떨어뜨리며 나무는 내게 속삭인다. 버려야 산다고,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아까워도 다 버리라고. 자아, 고집, 교만, 혈기, 미움, 다툼, 시기, 질투, 게으름.... 이제 더는 버릴 것이 없는 것 같은데도 나무는 자꾸만 버리라고 속삭인다. 얼마나 더 버려야 하는 건지....버려도, 버려도 다 버리지 못한 육신의 소욕들.... 바닥에 뒹구는 나뭇잎은, 아직도 멀었다고 속삭인다.

고개를 들어 나무를 본다. 이제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나뭇잎을 다 떨어트려 알몸이 된 나무들이 참 허허롭고 볼품없다. 그렇지만 내년에 다시 생명을 꽃피우려면 그렇게 다 버려야 한겨울을 버텨낼 수 있다고 나무는 내게 또 속삭인다. 다 버리고 알몸만 남아야 진액을 조금이라도 덜 소진해 매서운 칼바람도, 차가운 눈비도 꿋꿋이 이겨 내고 새봄을 맞을 수 있다고 말을 건넨다.

아, 내 안에는 아직도 떨쳐 내야 할 것들이 무성히 남아 있는데... 그런 것들을 가진 채로는 혹독한 겨울을 견뎌 낼 수 없다고, 십자가의 길을 갈 때 맞는 모진 칼바람과 눈비를 이겨 낼 수 없다고... 나무들이 두런두런 건넨 말들이 자꾸만 귓전을 때린다.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오던 길을 되돌아본다. 정신없이 달려온 길이다. 내 안에서 자라는 육신의 소욕을 다 버리고 달렸더라면 참 쉽게 왔을 이 길을 왜 그리 멀리 돌아 돌아 왔는지... 왜 아직도 돌아가고 있는지... 다 버리면 앙상하고 허허로울 모습이 부끄러웠나. 그래서 화려한 겉모습을 자랑하며 외식하고 살아온 건가.

그래, 이제 아낌없이 버려야겠다. 내 안에는 영생이라는 생명의 씨앗이 있지 않은가. 그 영생을 끝까지 부여잡으려면 나도 불필요한 소모를 줄이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려야겠다. 진액을 아끼려고 초겨울부터 맨몸이 된 나무처럼 나도 그렇게 다 버리고 맨몸뚱이가 되어야겠다. 오직 영원한 생명을 품에 안고 그 나라에 가기까지 혹독한 추위도, 매서운 비바람도, 거친 풍랑도 다 이기려면, 버리고 또 버려 초겨울부터 나목(裸木)이 된 나무에게서 지혜를 배워 나도 그렇게 온전히 버리며 살아야겠다.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요10:17~18).

/박은주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31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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