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4-23 10:39:23 ]
측량할 수 없는 우주. 이 공간 안에 푸른 지구가 있다. 우주 속 지구의 존재처럼, 지구 속에 거주하는 ‘나’는 티끌보다 작다. 그러한 내 안에는 우주를 품을 수 있는 ‘생각’이 있다. 측량할 수 없는 우주처럼 내 생각의 너비도 무한하다. 이 공통점 때문에 인간은 창조주가 된 듯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지구가 자전하면서 하루가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것은 ‘시간’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다. 사람들이 지구 안에서 생활하듯 전(全) 우주도 ‘시간’ 속에 포함되어 있다. 시간은 틀림이 없다. 멈춤이 없다. 짧아지거나 늘어짐의 변화도 없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현재는 선택의 연속이다. 현재는 과거가 쌓인 결과이다. 미래 또한 현재의 모습에 의해 만들어진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내일이 다르게 펼쳐진다. 현재 모습이 어떠하든, 꿈을 갖고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자기계발서의 주된 메뉴다.
약 3500년 전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인들 중 ‘모세’가 태어난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지만, 이집트의 왕자가 된다. 40세가 되던 어느 날 왕자에서 사람을 죽인 죄인이 되었다. 그 후 40년은 양 치는 목동이 되어 광야를 끝없이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노예로 태어난 모세가 왕자가 된 것은 본인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다.
우주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힘이다. 반면에 왕자에서 양치기가 된 것은 본인이 선택해 이루어졌다. 나약한 자신의 처지를 모를 때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사람은 한계점을 인식해야 한다. 한계 상황을 인식하고 있던 80세 모세 앞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자신의 한계점을 거부하고 바벨탑을 건설하던 사람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언어의 벽 앞에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인간이 땀 흘려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티끌과 같다. 한 세대가 끝나면 모두 사라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한 노력은 시간의 범위를 초월한 결과를 얻는다. 모세는 하나님 뜻을 이루려고 노력했기에 출애굽을 이끈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지금까지 성경에 기록되었다.
생각의 너비가 무한하다고 해서 티끌과 같은 자신의 존재를 인지(認知)하지 못하면 실패한다. 무력한 인간의 한계 상황이 그대로 노출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시간이 정확히 지켜지듯 예수께서 선포하신 말씀도 어긋남이 없다. 이에 반해 우리 인간은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할 때가 많다.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 고통일 때가 있다. 육신의 소욕이 하나님 말씀을 거부한다. 말씀대로 살지 못해 결과가 그런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구하는 대로 주지 않는다며 불평하는 우리의 모습을 본다.
지구 옆을 바짝 붙어 자전과 공전하는 달은 어떤 힘으로 지구 옆을 지키고 있을까. 팽창하는 우주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공급되고 있을까. 우리는 해답을 알고 있다. 모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질서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33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