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부모와 자녀, 그리고 나

등록날짜 [ 2013-05-21 10:37:38 ]

언제나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가치 있는 법
세월은 무수히 흘러도 부모는 언제나 그 자리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중학생 시절 쓰던 연습장 표지에 적어 놓았던 푸시킨의 시구(詩句)에 고개가 주억거리는 요즈음이다.

마음은 아직도 20대 청춘인데 어느새 불혹을 훌쩍 넘겨 지천명을 바라보는 중년이 되었다. 언제나 품 안에, 무릎 아래 둘 줄 알았던 자녀가 스무 살이 되고 머리가 굵었다고 좀 챙겨 주려면 알아서 한다고 귀찮아 한다.

깃털같이 많은 날이라던 그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 어느 순간 나를 이 낯선 시간 속에 데려다 놓았는지….

#어버이날, 카네이션 화분을 들고 아버지를 찾아뵈었다. 요양병원에서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한쪽 벽에 5월 달력만 걸려  있어 휑뎅그렁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몇몇 환자분 가슴에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이 달려 있다. 자녀가 다녀간 것인지 이곳 요양원에 있는 분들이 만든 것인지 분간이 안 되는데, 어쨌든 아버지의 가슴은 비어 있었다.

가져간 카네이션 화분을 침상 옆에 두지만, 아버지는 꽃에는 눈길도 안 주고 사간 빵만 잡수신다. 함께 간 여동생이 ‘아기가 된 할머니’ 이야기를 한다. 서른셋인 동생 눈에도 아버지가 더는 어른이 아닌 아기처럼 보이나 보다.

#“예쁜 짓~!” 어른들의 시도 때도 없는 주문에 어린 나는 고개를 기우뚱하고 오른손 검지를 볼에 갖다 대었다. 그러면 어른들은 정말 예쁜 짓이나 한 양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좋아했다.

요즈음 내 조카들은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를 만들거나 그 작은 손으로 브이(V) 자를 만들어 눈 옆에 붙인다. 여동생은 그런 순간들을 휴대폰에 수두룩이 넣어 놓고 “예쁘지?” 하고 보여 준다.

“엄마 앞에서 짝짜꿍 아빠 앞에서 짝짜꿍 엄마 한숨은 잠자고 아빠 주름살 펴져라.” 어릴 때 심심찮게 부르던 노래다. 요즘 아이들은 이 노래를 알기나 하는지….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잘도 표현한 것 같다.

#5월, 가정의 달이다. 말(馬)만 한 자녀를 둔 부모인 나도, 나를 낳고 길러주신 늙으신 부모님을 돌아본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살가운 정도 없는 세월을 자식들 커 가는 재미에 고생을 마다치 않고 버텨 준 부모가 있어 오늘의 내가 있다.

깊이 모를 증오로 얼굴조차 마주하고 싶지 않던 날들도 지나고 보니 그 시절에는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위로가 된다. 나는 자녀에게 어떤 부모로 그려지고 있는지 새삼스럽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1~4).


/정성남 집사
(연합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33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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