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8-07 10:03:26 ]
몇 년 전 남편이 아는 분과 함께 중국으로 출장을 간 적이 있다.
휴대전화기 문자 메시지 알림이 울려서 확인했다.
“루이뷔통 사 줄까?”
“그게 뭔데요?”
생뚱맞은 소리에 뭔지 몰라서 그렇게 답장을 보냈다. 며칠 후, 남편이 출장 갔다 돌아와서 가방을 건네주었다. 루이뷔통 가방이었다.
“이거 진짜 비싼 가방이면, 다시 팔면 안 될까요? 난 밑바닥 구멍만 안 나고 물건 담을 수만 있으면 되는데….”
사실 난 현금이 더 좋았다. 어디 쓸 데가 한두 군덴가. 되팔면 좋겠다는 말에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거 짝퉁이야! 얼마 안 쓰면 낡아질 수 있어”라고 말했다.
또 몇 년 전 일이다. 남편이, 어려운 살림에도 애들 키우며 대학원 뒷바라지해 줘 고맙다며 결혼 후 처음으로 백화점에 가서 정장 한 벌을 사 줬다. 그때 당시 그 돈이면 한 달 생활비로도 충분한 돈이었다. 그 옷을 사서 몇 번이나 입었을까. 지금 그 옷은 입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장롱에서 나를 보면서 채찍질한다.
그 이후에 남편이 가끔 백화점에서 옷을 사준다고 말하면 나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주님이 주신 물질 함부로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그 옷을 보면서 하게 된다. 왜냐하면 나는 세상 유행,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관심 두는 것, 솔직히 알고 싶지도, 갖고 싶은 마음도, 관심도 없다.
어릴 적에 하늘과 산만 보이는 시골에서 자라서일까?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그것은 분명 주님의 은혜였다.
얼마 전 사촌 동생 가족이 우리 집에 온 적이 있다. 사촌 동생이 “형부, 우리 언니 어때요?” 하고 물었다. 남편 왈, “숙맥이지!” 며칠 지나서 남편한테 물어봤다. “내가 그렇게 숙맥이야?”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세상에 관심이 있는 것이 도대체 무얼까? 참으로 고민이었다. 세상적인 것을 모르면 정말 숙맥인가 보다. 숙맥이라는 말이 어디서 나왔나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다.
‘숙맥불변(菽麥不辨)’이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콩 숙(菽), 보리 맥(麥), 아닐 불(不), 가릴 변(辨), 콩과 보리를 분별 못 한다는 말이란다. 그만큼 순진하고 어리석다는 뜻이다.
그런데 난 그 말에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정말 숙맥은 어떤 사람들일까? 영적인 숙맥과 육적인 숙맥이 있다면, 난 육적인 숙맥을 선택할 것이다.
바울은 고백했다.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3:8).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나는 학문도 어떤 지식도 없다. 바울은 많은 학문의 지식을 가졌기에 배설물처럼 버릴 수 있었다. 나는 버릴 지식도 학문도 없지만 나를 위해 살 찢고 피 흘리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 체험의 지식만큼은 내 안에 가득하다. 이 영적인 지식을 모르는 자가 진정한 숙맥불변이 아닐까.
신령한 생명의 말씀과 기도로만 이런 숙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쉬지 말고 기도하고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명령,
나는 오늘도 숙맥불변(?)에서 벗어나려고 무릎 꿇어 기도한다.
/이은경 집사
위 글은 교회신문 <34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