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새벽녘에 들린 주님 음성

등록날짜 [ 2013-09-03 11:15:49 ]

한국과 가깝지만, 그래도 타국이라 멀게 느껴지는 이곳 일본에서 지낸 지 두 해가 다 되어 갑니다.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 지내다 보니, 심신이 지칠 때면 휴대전화기 속에 든 가족들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며 마음을 달랩니다. 어느 날 잠들기 전에, 딸아이가 찬양하며 율동하는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예배시간에 장난꾸러기~♪ 예수님이 보시면 뭐라 하실까. 기도시간에 장난꾸러기~♪ 예수님이 보시면 뭐라 하실까.”

영상을 본 후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미소를 잔뜩 머금은 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평소 자리에 눕자마자 잠드는 편인데, 그날은 이상하게 잠이 멀리 달아나 버렸습니다. 한참을 뒤척이며 잠을 청했지만 머리가 점점 더 맑아지더니 이상하게도 동영상 속 찬양이 자꾸만 맴돌았습니다.

게다가 그동안 담임목사님께 들었던 설교 말씀들과 지금 내 신앙생활 모습이 겹치면서 생각이 온통 회오리를 쳤습니다. 한참 지나자 뒤죽박죽이던 생각들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와 퍼즐처럼 제 위치를 찾았습니다. 마침내 완성된 퍼즐 작품처럼 선명한 문장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지금까지 네 삶을 예수께서 보시면 뭐라 하실 것 같니?”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예수 믿기 전후를 비교해 보니, 달라진 점이 선뜻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나는 정말 예수를 순전히 믿었는가? 강도당한 행인을 전심으로 돌본 사마리아인처럼 내 이웃을 죽기까지 사랑하였는가? 나 자신을 속이지 않고 거룩하고 진실하게 살았는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는가? 죽기까지 죄를 미워하였는가? 믿는 자로서 마땅히 할 일을 했는가? 천국 소망을 누릴 자격을 갖췄는가?”

수많은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졌지만 어느 것 하나에도 온전히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지 않고 신앙 양심이 소리치던 그 새벽. 하나님 면전에 선 듯한 초라함이 몸서리치듯 몰려와 견딜 수 없었습니다.

단순히 사단에게 정죄받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받을 심판처럼 말씀에 입각한 객관적인 신앙 양심이 소리쳤습니다. 바로 그때, 초라한 나를 감싸시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시편 102편에 기록되어 있듯, ‘하나님께서는 곤고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 근심을 하나님 앞에 토하듯이 기도하면 만나 주신다’는 감동과 위로를 주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기도하니 이내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제가 처음 예수를 만났을 때, 몹시 외로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지 못해 외롭지만, 그때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환경 탓에 찾아온 외로움에 감사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예기치 못한 새벽 시간에 딸아이의 율동찬양으로 자신을 알리시고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내가 더 알기 바라시는 하나님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딸아이가 하는 사소한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아빠인 내게 행복이듯, 내 삶 속에 담긴 언행 하나하나도 아버지 하나님이 보실 때 행복하시도록 매일 힘쓰리라 다짐해 봅니다.


/이성문 집사
남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352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