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

등록날짜 [ 2013-12-31 10:17:12 ]

유명한 시인이 쓴 산문집을 얼마 전 꺼내 읽어 보았다. 시인이 써 내려간 글귀가 마음에 들었는지 군데군데 밑줄을 그어놓았다. 대개 시인이 진리에 관해 서술한 부분이었다.

이번에 그 밑줄 친 내용을 다시 읽어 보니 별 감흥이 일지 않았다. 그땐 왜 밑줄까지 그어가며 읽었는지 의구심마저 들었다. 책은 그대로인데 내 생각이 변했기 때문일까. 그 때 내가 책을 다 읽지 않은 이유는 뭘까. 아마도 인터넷에 남긴 다른 사람들의 책 리뷰와 내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인터넷에는 산문집을 읽은 사람들이 남긴 평가가 무척 많았다.

“시인은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삶을 말하며 진리를 생각나게 할 뿐이다” “이제까지 몰랐던 자신이 한심스럽게 보였다” “책에서 읽은 글귀 한 줄이 어머니처럼 위안과 위로를 준다” “벼랑 끝에 선 위태로운 사람들을 향해 가슴을 열고 자신의 체온을 나눠 주려는 듯하다”

그 산문집에 감격한 사람들의 평가를 부정하려고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이들이 남긴 말은 모두 옳을 것이다. 실제로 공감하고 감동하였기에 긍정적인 글이 넘쳐난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바는 ‘사람들이 평가하는 진리’와 ‘내가 소유한 진리’가 다르다는 점이다.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진리(眞理)의 뜻은 ‘참된 이치, 또는 참된 도리’다. 여기서 말하는 참된 이치나 도리는 변한다. 변하는 대상이 진리일까. 진정한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변하지 않은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침이면 태양이 떠오른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태양은 존재한다. 우주, 태양, 지구를 비롯한 인간의 힘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대상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들도 언젠가는 변함이 있을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변함없는 이가 있다.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태어나신 이가 바로 영원히 변함없는 진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성탄하신 예수를 찬양하고자 우리 교회에서는 일만 명 찬양대를 조직했다. 나도 찬양대에 소속해 9월부터 연습했다. 12월 25일 오후, 그동안 준비해 온 찬양을 목청 높여 하나님께 올려 드렸다. 한 시간 동안 곧은 자세로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었다. 발은 저리고 무릎 관절은 뻣뻣하게 굳었다. 허리가 아프고 양어깨는 무거운 돌덩이를 짊어진 듯했다. 목은 깁스한 것 같았고 머리가 무거웠다.

그런데 총 리허설 때 내 왼쪽 대각선 앞좌석에 휠체어를 탄 자매가 사람들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리허설 때 줄곧 앉아 있었는데 칸타타가 시작되자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끝날 때까지 서 있는 게 아닌가.

몸이 불편한 자매가 고통을 이기고 한 시간 동안 일어서서 찬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시인이 산문집에서 말한 진리는 변할 수 있는 것들이다. 반면, 내 속에 있는 진리는 변하지 않은 하나님 말씀이다. 이 진리에 감사해서 나도, 몸이 불편한 그 자매도 찬양을 한 것이다.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36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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