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5-06 15:59:29 ]
교단에 서는 사람으로서 미안한 마음 가눌 길 없어
살아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느끼게 해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날부터 고통스러운 뉴스를 피하고 싶어도 눈을 돌릴 수 없다. 침통한 마음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어린 학생들이 희생된 사실이 우리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자녀를 둔 부모이자 학교 현장에서 교단에 서야 하는 나로서는 아이들을 향한 미안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학교에 출근했을 때 동료 교사들에게서 나타나는 우울함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 학교에서는 신우회 교사들이 학생들과 함께 매주 한 번 점심시간에 소강당에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 동료 교사 중 남편이 목사이신 분이 계셔서 그 목사님 인도하에 5년 넘게 진행해 왔다.
세월호 사건 다음 날 학생들이 소강당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몰려와 목사님 인도하에 우리 신우회 교사와 학생들은 예배 시간 20분 동안 함께 애절하게 기도했다. 여기저기서 그들을 살려 달라는 외침이 들렸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까지 “아멘” 하며 흐느껴 울었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한 예배였다.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2학년 2반 한 아이가 “선생님, 지금 우리 고2, 97년생은요. 초등학교 6학년 때에도 신종플루 때문에 수학여행을 가지 못해서 고2 수학여행은 정말 기대돼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세월호에 탄 아이들도 고2. 이 아이들이 처음 배에 탔을 때 제주도에서 친구들과 같이할 시간들을 상상하며 수학여행에 얼마나 들떠 있었을까? 학생들이 웃고 떠들며 공을 차는 모습이, 살아 있어 준다는 것이 우리에게 희망의 불씨처럼 아름다운 꽃처럼 그토록 화려하게 반짝일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그 참담한 상황을 혼자 버텨 내야 한 아이들 때문에 울었다. 그 아이들이 마주한 공포와 두려움을 안은 아픔 때문에 통곡했다.
어느덧 내 자녀에 대한 걱정 대신 다른 아이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심령이 채워졌다. 자녀를 놓고 기도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내 아이가 어려움을 피하고 힘든 세상을 잘 헤쳐 나가게 해 달라고 아무리 기도해도 기도가 부족한가 싶어 더욱 기도에 매달린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아들, 내 딸’이 아닌 ‘남의 아들, 남의 딸’들을 마음에 품고 그 아이들만을 놓고 기도했다. 이 아이들을 우리 아이로 느끼고 기도하면서 흘린 눈물에서 참된 기도의 의미를 맛보았다. 이런 울음과 기도야말로 진정한 어미 노릇이 아닐까. 남의 자녀들을 위해 흘리는 눈물과 기도가 각박한 세상 속에서 위안을 주는 것 같았다.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 아닌가.
주님은 떠나시기 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일들을 아시고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이들을 바라보는 눈은 한없이 애처로우신 눈이 아니었을까. 주님은 지금도 나와 내 자녀, 내 가족만이 아닌 남의 자녀, 우리 자녀에 대해서도 애절한 마음으로 진심으로 기도하기를 원하고 계신다.
/서봉선 집사
56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38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