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과잉 감정을 추스를 때

등록날짜 [ 2014-08-04 23:39:18 ]

“커겅커겅커겅! 커겅커겅커겅!”

한 달여 전부터 요녀석이 자기 존재를 귀에 거슬리게 알렸다. 사는 곳이 아파트 밀집 지역이라 아파트 거주자가 키우는 개라면 벌써 민원이 들어가 조치가 취해졌을 법한데 요녀석은 아직까지 건재하다.

매일 나름 정해진 시간에 짖어 대는데 그 울림이 대단하다. 처음에는 신경이 곤두서더니 이제는 도리어 내가 먼저 귀를 모으고 기다리는 형국이 됐다. TV동물농장에서 학습한 알량함으로 추측하건대, 고녀석 식구들이 모두 나가고 나면 혼자 있게 된 자신을 못 견뎌 하며 한차례 징글맞게 짖어 대고, 해거름 즈음 사람들의 귀가 시간에 맞춰 주인이 빨리 오라고 짖어 대는 것은 아닐까.

종종 기다림에 지친 한낮에도 청승맞게 짖는다. 빈 공간의 크기를 집어삼킬 듯 악다구니를 쓰는 녀석이 고약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처량하다. 에고, 저렇게 힘을 다 쏟고 나면 두 귀 축 늘어뜨리고 배 깔고 엎드려 눈 지그시 감고 외로움과 사투를 벌일 테지. 쯧쯧쯧. 누구를 향한 분노인지 안다는 양 새들도 매미도 고녀석이 짖는 동안은 잠잠하다.
 

세월호 사건 이전과 이후 우리나라는 확실하게 달라져야 한다고들 한다. 국가개조라는 큰 그림 속에 나부터 달라져야겠건만....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아비규환 속에 TV에 눈을 맞추고 몇 날 며칠을 온 국민이 분노로 몸서리를 쳤다. 집단 우울증에 경제가 안 돌고 정치는 곤두박질치고 지방선거로 국민의 눈이 더는 물렁하지 않다는 듯 구석구석 썩고 부패한 현상이 우후죽순처럼 드러났다. 바야흐로 ‘빨리빨리’가 몰고 온 후유증이 이렇게 내가 사는 사회 곳곳에서 환부를 내보이고 있다.
 

올해 구역장인 내게 바로 그 날이 내 신앙의 비포 에프터(Before After)가 될 시점이라고는 짐작도 못 했다. 내가 얼마나 직분을 안일하게 여겼는지, 구역 식구들의 모습에서 느낀 인간적인 실망감과 저들을 품을 사랑 없는 나 자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테러에 준하는 문자메시지에 묵묵부답하며 인내하던 중 커겅커겅거리며 고녀석이 짖어 대는데 문득 내 구역 식구가 오버랩 되었다.
 

미물도 사랑을 알고 정에 목말라 하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고녀석의 안쓰러움도 미루어 알면서 내 식구의 아픔 모를까마는 선뜻 다가서지 못함도 내 부족함인 것을 어쩌랴. 무뎌진 날을 벼리듯 달구어지고 두들겨 맞고 풀무질을 얼마나 하면 구역장감이 될지....
 

이제 무릎 꿇을 때다. 과잉한 감정을 추스를 때다. 분노는 냉철한 이성으로, 미움은 마땅히 사랑으로, 때로 어쩔 도리 없는 경우는 그저 기다림으로. 내 감정을 스스로 속이지 말 것! 내 감정에 속수무책 당하지 말 것!
 

길가의 야생화는 예쁘다고, 강아지풀은 부드럽다고 해 주자. 한창 제 빛깔을 뽐내고 있는 배롱나무 꽃을 따라 함박웃음 웃어 보자. 찜통더위 속에도 때때로 시원한 바람이 불듯 아프고 괴롭고 화나는 이 감정도 다독여지리라.


   / 정성남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39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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