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경계하며

등록날짜 [ 2014-08-26 00:42:08 ]

거룩한 주일, 옷을 단정히 차려입고 집을 나와 교회에 옵니다. 예배 시작 전에 찬양으로 마음 문을 열고 예배를 드립니다.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경청하고 ‘아멘’으로 화답하며 예배를 마칩니다.

교회에 소속된 기관 또는 그룹에서 전도나 충성, 기도와 같은 믿음의 활동을 하고 저녁예배를 드립니다. 교회 또는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이것이 보통 기독교인의 평범한 주일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신앙생활 일상에 언제부터인지 주님을 향한 ‘믿음’이 빠지고 ‘겉모습’(겉치레)뿐인 면을 느낍니다. 이 같은 경험들은 필자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 보았을 법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매너리즘에 빠져 타성과 나태함에 푹 젖어 습관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우(愚)를 범하는 이도 있습니다.
 

이때부터 나와 주님만 알고 있는 신앙의 이중생활(二重生活)이 본격화됩니다. 아니 어쩌면, 본인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주님만 알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좀 더 들여다보면 실생활에서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 거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헐뜯고, 탐욕과 욕심으로 가득 차 있지만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띠며 가증스럽게 교회를 활보하고 다닙니다.

그러면서 신앙 양심의 가책도 없고 주님 앞에 부끄러움조차도 없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믿음과 행위를 분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믿음과 행위를 분리하고, 신앙생활과 일상생활을 분리하고, 오직 경건의 능력은 없고 오직 경건의 모양만 갖춘 신앙생활을 합니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으니 신앙생활의 열매도 없습니다. 성경 속 믿음의 선배와 같이 예수 생명을 전하는 선한 양심, 선한 행실은 찾아보기 어렵고, 기껏 해야 일반 사람들의 양심수준, 세속화한 종교인의 행실수준, 인본주의적 행동이 고작인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합니다. 즉, 신앙과 삶이 너무나도 동떨어진 모습의 생활을 합니다.
 

언제까지 이러한 이중생활을 할 것인가? 이러한 위선의 가면을 어떻게 벗어 버려야 할 것인가? 이것을 벗는 방법은 성령 충만뿐이며, 성령 충만은 예배를 통해 말씀을 듣고, 들은 말씀을 심비에 새기고(고후3:3), 세속을 벗어날 수 있도록 날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행함으로써 죽은 믿음이 아닌 살아 있는 믿음(약2:17)으로 만들어 감으로써 믿음을 온전케 할 수 있습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약2:22).
 

현대를 사는 어떤 신앙인도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예배를 통해서 깨닫게 하시고, 성경 말씀을 통해서 점검할 기준을 주셨고, 기도를 통해서 성령 충만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항상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추듯 성경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뒤돌아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김창윤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39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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