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9-23 23:38:28 ]
더위가 좀 꺾이나 싶었는데 바람이 제법 선선하다. 마음을 추스르고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가을이 왔다.
“맴맴맴맴 찌르르르” 뜨거운 한낮의 더위가 좋다는 뜻인지 싫다는 투정인지 귀청을 따갑게 울리던 매미 소리가 아직 귀에 남았는데, “귀뚜르르 뚜르르르” 아침저녁 들리는 소리는 이제 가을 귀뚜라미 소리다.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 왔구나! 다섯 살, 세 살 된 아들딸과 마을길을 나섰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파아란 맑은 하늘도, 그 속에 둥실둥실 떠 있는 흰 구름도 아주 멋지다. 창조주 하나님의 작품인 자연은 언제 봐도 놀라울 뿐이다. 아이들도 그것을 알까?
“와, 하나님께서 만드신 구름이 솜사탕 같다. 그치? 한번 따서 먹어볼까? 자, 엄마처럼 먹어봐. 엄청 맛있어.”
손을 뻗어 하늘 구름을 힘껏 당겨와 아이들 앞에 척 내민다. 맛있게 실감 나게 먹는 척을 하던 아들 녀석이 말한다.
“엄마, 새들에게 말해서 솜사탕을 더 갖다 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그래? 새들을 한번 불러볼까?”
빙그레 웃음이 절로 난다. 아이들과 제법 걸었는데 이번에는 오래된 빌라의 화단 하나가 눈에 띈다. 빌라 벽을 따라 벽돌을 아무렇게나 쌓아올리고 흙을 채워 만든 화단은 딱히 가꾸는 주인이 없는 것이 확실하다. 도로변 먼지를 다 뒤집어쓴 풀들이 무성히 섞여 함께 자란 꼴을 보니 그렇다.
지난 봄, 심심한 동네 꼬맹이들이 씨를 뿌려놓았는지, ‘잡풀보다는 낫겠지’ 하고 동네 어르신이 씨를 심었는지 모르겠지만 허름한 화단 가득 탐스러운 노란 분꽃이 무성한 축제를 열었다. 몇몇 노란 분꽃이 진 자리에는 색깔도 선명한 까만 동그란 씨가 다닥다닥 붙었다.
“얘들아, 여기 분꽃 좀 봐라. 까만 씨도 많이 있네. 우리 이거 따다가 내년 봄에 심어볼까?”
아이들은 신이 났다. 어쩌면 한 해 두 해 피고 지고 씨를 내린 분꽃의 햇수가 초롱초롱 호기심 어린 눈망울을 굴리며 씨를 따는 우리 아이들 나이보다 많을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따 모은 까만 분꽃 씨를 한 손에 몇 알씩 쥐고 자랑스럽게 집으로 돌아왔다.
내년 봄에 아이들과 씨앗 뿌릴 일이 생겼다. 그리고 내년 가을 이맘때는 아이들과 심은 씨앗에서 자란 초록의 생명과 노란 분꽃과 씨앗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참, 신기하지? 까만 씨앗을 모아서 흙에 뿌렸을 뿐인데 다시 이렇게 예쁜 분꽃이 피었네. 씨앗 속에 분꽃이 들어있었나 봐. 그치? 아직은 작고 어린 너희 속에는 무엇이 들어서 자라고 있을까? 어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서 우리 하나님께 보여드리면 좋을까?”
아이들이 커서도 분꽃을 만날 때면 어릴 적 엄마와 키워본 노오란 분꽃과 까만 씨앗을 떠올리고 보잘것없는 까만 씨앗 속에 들어 있던 놀라운 생명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놀랍고 아름다운 자연을 볼 때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떠올릴 수 있는 감수성이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한 알의 밀알 되어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어느 한순간도 잊지 않고 한평생 감사할 수 있기를....
가을 하늘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 오미정 집사(62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40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