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11-12 11:49:02 ]
황해도 출신인 외할아버지는 세상에 무엇 하나라도 그냥 버릴 것이 없다며 주워온 물건들을 뚝딱뚝딱 고쳐 쓰시곤 하셨다. 자전거 점포 운영을 통해 고장 난 자전거와 리어카를 수리하셨던 외할아버지의 기술은 체인과 바퀴를 만지는 데 그치지 않고, 주워 온 폐 목재를 가지고 계단을 만들거나 바깥 화장실 문을 손수 만드시기도 했다.
강아지집, 울타리, 지붕, 낚싯대, …. 무엇이든 가릴 것 없이 필요한 것이면 언제든 만들어 내시는 외할아버지의 생전 모습이 또렷이 기억난다.
근검 절약하는 생활이 몸에 배어 무엇이든 아끼며 살아야 한다는 실천이 자급자족으로 나타났던 그 시절, 오늘날은 ‘DIY(디아이와이)’라 부르며 자급자족이 새로운 풍속으로 자리잡고 있다.
‘DIY’란 ‘Do It Yourself(스스로 하는)’의 약어다. 사전을 찾아보니 그 유래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에서 물자부족, 인력부족 상황에서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해야 한다는 사회운동으로 생겨났다. 요즘 우리가 말하는 DIY는 가정용품 수리나 장식을 직접 하는 것을 뜻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가옥 수리나 자동차 수리, 가구제작을 말하기도 한다.
스스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되어 국내에도 DIY 열풍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일었다. 비싼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얻기보다는 합리적인 소비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큰 호응을 얻었고, 이보다 더 큰 기쁨은 내 손으로 직접 만들며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DIY의 영향은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인스턴트 세대에게 새로운 삶의 가치를 제시하며 삶에 애착을 갖게 한다. 쓸모 없어 버려지는 물건들을 가치 있게 만드는 작업, 소소한 일상용품을 만드는 취미를 계기로 인생까지 DIY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전엔 쓸모가 없어 버려졌지만 가치 있는 물건으로 점차 바뀐다는 점에서 DIY 과정은 마치 버려진 내 인생이 예수를 만나 영혼의 때를 준비하는 값진 모습과 같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믿음도 충성의 자리도 소극적으로 변한다. 인스턴트 세대여서 그런 것일까.
사람들은 DIY라는 새로운 풍속과 더불어 이것으로 직업을 창출하거나 상품을 재생산한다. 또 주위에 버린 물건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며, ‘낡고 오래된 것은 다 하찮다’라는 인식을 바꿔 가고 있다. 특히 중요한 점은 인식한 문제를 생각 속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적극성을 뛰어넘어 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DIY는 우리에게 큰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한 해를 돌아보며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충성의 자리에서 너는 주님이 편하게 쓰실 수 있는 소재이며 도구였던가, 거기서 네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무엇이었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없었는가. 나는 여전히 실수투성이고 많은 문제가 있다. 또 나는 해마다 충성의 자리에 머물지, 물러설지 고민과 갈등을 하는 배신자다. 주님은 그런 나를 한 번도 버리지 않으시고 충성의 자리로 다시 불러 주신다.
주어진 삶 속에서 주님의 흔적을 남길 곳은 바로 충성의 자리다. 거기에는 나와 주님이 나눈 얘기가 있다. 세상적인 행복과 성공은 없지만 충성의 자리에서 DIY하며, 모두 감사와 기쁨으로 인생을 쏟고 주님의 흔적을 남기는 하나님의 작품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김규식 교사
(요셉부)
위 글은 교회신문 <40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