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11-18 09:44:30 ]
요즘 건강이 좋지 않은데 체중도 늘어서 겸사겸사 많이 걸으려고 한다. 회사 업무가 워낙 바쁘다 보니 운동할 시간을 낼 틈이 없어서 아침 출근 시간을 활용한다. 회사가 분당 끝자락인 구미동 오리역에 있는데, 두 정거장 앞인 정자역에 내려 회사까지 걷는 것이다.
내가 운동삼아 걷는 길은 일반도로가 아니라 한강 지류인 탄천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다. 정자역에서 회사까지 산책로를 따라 쭉 걷다 보면 1시간 10분 정도 걸리는데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등굣길 학생, 개를 산책시키는 아줌마, 중년 부부…. 그 중에도 어느 노부부가 눈에 띄었다.
언뜻 봐도 80세가 넘어 보이는 노부부는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걷는다. 멀리서 볼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할머니께서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혹여 할머니가 탄천으로 떨어지거나 돌부리에 걸릴까 봐 그렇게 손을 꼭 잡고 걸어가셨다.
아침 출근길에는 좀처럼 보기 드문 참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아침마다 먼발치에서나마 그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무척 좋았다. 한동안 그 노부부를 계속 보다 보니 이제는 ‘오늘도 만날 수 있을까?’ 하며 내심 기다리기까지 한다.
며칠 전,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 노부부가 손을 잡고 걸을 때 항상 할아버지가 탄천 쪽에 서서 걷는 점이었다. 만약 두 분이 손을 떼지 않고 반환점을 돌았다면, 되돌아올 때는 할머니가 탄천 쪽에 서서 걸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걷는 위치를 바꾸었기에 할아버지가 계속 탄천 쪽에 서서 걸으셨다. 정말 할아버지가 의도적으로 그러시는지 궁금해서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두 분을 유심히 관찰했다.
며칠째 눈여겨본 결과, 할아버지는 항상 탄천 쪽에 서서 할머니의 손을 잡고 걸으셨다. 갑자기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시각 장애를 지닌 늙은 아내를 향한 늙은 지아비의 세심한 배려와 사랑에 절로 고개가 숙어진 것이다.
주님께서도 우리의 신랑이 되시기에 신부인 우리를 항상 지켜주고 감싸주신다. 주님께서는 세상이란 악의 구렁텅이에 빠질까 봐 노심초사 우리를 지켜주시는데도 정작 우리는 그 사랑의 손길을 뿌리치고 세상 풍속이 좋아서 세상을 벗 삼아 주님의 품을 떠나려 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마10:30-31) 말씀하신 주님의 사랑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평온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잊고 살 때가 잦은데, 그 노부부를 통해 깨닫게 하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요즈음 사소한 일로 아내에게 짜증내고 가시 돋친 말을 내뱉어서 더욱 부끄러웠다. 하나님께서는 돕는 배필로서 아내를 주시면서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골3:19)고 당부하셨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5:25)”.
이 말씀은 목숨을 바쳐서 아내를 사랑하고 아껴주라는 뜻이지만, 나는 말씀대로 하기는커녕 되레 아내에게 상처를 주기만 했으니…. 아내는 늘 내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소중함보다는 소홀히 대했으니 주님께서 그 노부부를 통해서 깨닫게 하신 것이다.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듯 네 아내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오늘은 아내에게 문자라도 보내야겠다.
/ 김창윤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1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