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우리 모두 사랑이 고픈 ‘관종’ 아닌가

등록날짜 [ 2014-12-23 16:23:45 ]

“샘(선생님), 쟤는 완전 관종이에요.”

“응? 관종이 뭔데?”

“그것도 모르세요? 관심종자! 관심 끌려고 막 장난치고 나대는 애들 말이에요.”

 

뭐든 줄여 부르길 즐기는 요즘 초등학생 아이들. ‘관종’이 무슨 말인지 설명을 듣고 보니 마음에 확 와 닿는다. 유달리 장난이 심한 개구쟁이나 보통 아이들보다 튀게 말하고 행동하는 아이들에게 또래 집단이 진단하고 붙여 준 별명 같은 말. 친구가 관종이라고 선생님께 이르는 아이 또한 선생님에게 사랑받고 싶은 관종이 아니고 무엇일까? 속내가 다 비치는 것이 귀엽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을 만나면서 이해하기 어렵던 모습들의 수수께끼가 하나하나 풀리는 것 같다.

 

쉬는 시간 내내 잘 놀다가 조용히 책 읽을 시간이 되면 “화장실 다녀와도 돼요?”라고 굳이 묻던 녀석. 여자 어른의 얼굴을 열심히 색칠한 후에 내 이름을 써 놓고 보여 주면서 킥킥대던 녀석. 나이에 안 맞는 아기 같은 말투로 툭하면 “집에 가고 싶다, 배가 고프다, 다리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며 보채던 녀석. 위험해 보이는 난간에 매달리지 말라면 더 용감하게 보란 듯이 난간을 오르고 흔들어대던 녀석. “우리 집에도 이거랑 똑같은 것 있는데…. 우리 아빠 오늘 공항 가셨는데….” 하며 이야기 실타래를 풀어 내던 녀석. 초콜릿을 좋아한다는 선생님 이야기를 흘려듣지 않고 쉬는 시간 편의점에 쪼르르 달려가 초콜릿을 사와 건네던 녀석. 때때로 “공부하기 싫어요. 개 싫어요. 캐(정말) 싫어요” 하며 비속어까지 써 가면서 불만하고 흥분하지만 막상 집에 갈 시간이 되면 뭉그적거리며 내 주위를 맴돌던 녀석까지.

 

이제 알 것 같다. 아이들 마음은 다 똑같다는 것을. 모두 누군가에게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몸부림치는 사랑스러운 어린 ‘관종’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얘들아, 선생님은 지금도 너희에게 관심이 아주 많단다. 사랑해.”

 

어른인들 아이들과 다를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하며 이어지는 찬양은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많은 이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자신이 이 땅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달라진다. 얼어붙은 길바닥에 뒹구는 겨울 낙엽처럼 보잘것없고 초라한 내 인생을 향해 엄지손가락 번쩍 치켜세우며 ‘최고’라고 응원하시는 주님의 위로를 만날 때 또 달라진다.

 

그리고 2000년 전에 이 땅에 성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물과 피를 다 쏟으셨다는 사실을 전해 들을 때, 게다가 그 엄청난 십자가 사랑이 이 세상 누구도 아닌 바로 나를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충격을 받는다.

 

마침내 태초에 천지를 만드신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은혜로 이 모든 구원의 소식이 믿어질 때, ‘관종’이 되어 아무렇게나 살아 온 인생의 백기를 들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사랑하는 딸아, 내게 반항하고 불순종하며 ‘관종’처럼 구는 모습을 이제 그만하렴. 나는 지금도 너에게 관심이 아주 많단다. 사랑한다.”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만 같다.

/ 오미정 집사

(62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41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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