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Who am I?(나는 누구인가)

등록날짜 [ 2015-01-13 14:43:19 ]

새해를 맞아 남들 다 하는 정리라는 것을 하다 보니 신문 스크랩 한 뭉치가 나왔다. 뭔가 하고 들춰 보자 책 서평이나 인상 깊던 기사, 시간 내서 필사해 보려던 신인문학상 당선작 들이다. 그리고 장장 삼 면에 걸쳐 난 광고가 눈에 띈다.

 

지난해 9월 17일 자 신문에 실린 시계 광고다. 첫째 면에는 하얀 여백을 바탕으로 정중앙에 크지 않은 글자 크기로 마치 사전의 기록 방식처럼 ‘롤렉스 웨이’ 제품을 정의하고 있다.

 

▶롤렉스 웨이 [명사]: 1. 롤렉스가 고집하는 고유의 방식. 2. 오직 시계만을 생산하는 롤렉스만의 시계 제조 방법. 3. ‘정밀’이라는 단어로는 표현하기 부족한 우리의 섬세함. 4. ‘전통’이라는 단어로도 담아내지 못하는 우리의 혁신. 5. 조각가는 아니지만 조각하고, 화가는 아니지만 그림을 그리고, 탐험가는 아니지만 탐험하는 우리의 작업. 6. 현존하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우리의 고집. 7. 롤렉스만의 방법. 8. 롤렉스 웨이.

 

단순하면서도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광고에 놀라면서 다음 장을 넘겼더니 이번에는 롤렉스 웨이의 생산지 소개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스위스에서만 생산 [명사]: 1. 제품 개념을 구상하고 설계하며 제조와 검증까지 스위스에서만 실시하는 롤렉스의 원칙. 2. 부품 하나하나에서부터 조립까지 극도로 까다로운 자체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 3. 결코 쉬운 시계 제작 방법이 아니지만, 4. 이것이 바로 롤렉스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 5. 롤렉스 웨이.

 

헛헛한 웃음 한 자락 흘리고 지독한 자부심이 담긴 내용에 ‘촌스러운 나는 잘 몰라도 상당한 명품인가 보다’ 하고 다음 장을 넘겼다. 또다시 롤렉스 광고가 다소 미안한 듯 새침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번에는 제품 테스트를 소개하는 차례인가 보다.

 

▶테스트 [명사]: 1. 실제로 일어나기 어려운 정도의 혹독한 환경에 시계를 노출하는 실험. 2. 현실의 극한 환경에서도 시계가 완벽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엄격하게 검증하는 과정. 3. 롤렉스를 착용하고 더 빨리, 더 멀리, 더 깊은 곳까지 갈 수 있도록 하려는 수단. 4. 끊임없이 개발하고 혁신하는 롤렉스만의 방식과 고집. 5. 롤렉스 웨이.

 

정신이 확 깬다. 간혹 두 면을 나란히 이어 광고하긴 하던데, 이거 내가 뭘 잘못 보았나 싶어 부랴부랴 앞으로 거슬러 가 곱씹으면서 삼 면에 걸친 광고를 본다. 아마도 이런 효과를 기대한 것일까, 그렇다면 광고 제작자는 소비자 심리를 훤히 꿰뚫고 있는 이리라.

 

그런데 이 광고는 참으로 건방지다. 보면 볼수록 자긍심을 넘어 자만과 오만, 아니 차라리 독선이라고 말하고 싶도록 우쭐댄다. ‘우리는 오직 시계만 생산해요. 그러므로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만드는 기업보다 훨씬 잘 만들 수밖에요.’ ‘롤렉스의 훌륭한 재원들은 모두가 자부심으로 일하므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요.’

 

내가 행간에서 읽어 낸 광고의 속내는 이랬다. 부럽다. 저토록 지독한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새해맞이 정리를 마무리하는 내내 광고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다. 우수 블로거 중에는 대가를 받고 제품을 홍보하는 이가 있다던데, 그런 줄 알겠다. 상당한 충격을 받아서 이렇게 고이 접어 두었으리라.

 

이제 나를 점검해 봐야겠다.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어떤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가,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진지하게 묻고 되묻는다. 올해는 양 비슷한 염소 말고 진짜 양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 정성남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1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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