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희망이 있어 행복하다

등록날짜 [ 2015-01-20 10:54:18 ]

2015년 대입 수능이 끝나고 새로운 고3이 2016년 수능에 매진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런데 지금 서울 일반계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으로 이뤄진 학급 대다수에 이미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거나, ‘영포자’(영어를 포기한 자), 모든 학업을 포기한 ‘학포자’가 넘친다. 그나마 공부에 관심이 있다고 하는 자연계열 이과생은 한 학급30명에 7~8명 정도 공부에 뜻을 두고 있지만, 인문계열 문과생은 한 학급에 수업을 듣는 학생이 3~4명이나 될까?

 

그렇다면 이 아이들이 학업 이외의 다른 꿈들을 하나씩 품고 있을까? 학생들과 1년에 학기별로 두 번 상담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특별히 품은 꿈도, 어떤 걸 해 볼 의지도 없을 뿐더러 “꼭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요?”라고 반문하는 아이를 자주 만난다. 그들에게 내 대답은 듣기 싫은 잔소리가 되어버린다.

 

일하지도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니트족(NEET)’, 평생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프리터(프리 아르바이터)’, 내향적이고 도전 정신도 없는 ‘초식남’…. 기성세대인 우리의 청소년 때에도 분명 이런 아이들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그 비율의 심각성이 미래를 어둡게 한다. 우리 시대보다 훨씬 극심한 경쟁사회에 던져졌지만, 특별한 목적의식을 갖기 힘든 풍요로운 듯 보이는 현실이, 거기에다 아무리 노력해도 얻기 힘든 취업까지, 희망 없는 미래를 보는 듯하다.

 

양극화가 매우 심한 일본 사회에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이 정상일 텐데, 정작 일본 젊은이들은 행복하다고 말한다고 한다.

 

2010년 일본 내각부 조사에서 20대 남성 65.9%, 20대 여성 75.2%가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학계의 해석은, 그들이 미래를 낙관해서 그런 대답을 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조사한 20대 63.1%는 ‘미래에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미래를 불안해하면서도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모순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지난여름에 이런 문제에 대해 연수를 받았다. 그 강사는 역설적으로 ‘희망이 없기에 행복하다’고 진단했다. 그 뜻은 인간이란 미래에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되었을 때 “지금 행복하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고도성장기나 거품경제 시기 젊은이들은 장시간 노동이나 힘든 경쟁을 불행하다고 느끼면서도, 언젠가 행복해지리라는 희망으로 버텼다.

 

지금은 큰 경제성장은 없지만 어느 시대보다 풍요롭고 다채로운 생활을 즐긴다. 중저가 브랜드의 옷을 사고, 맥도널드에서 런치세트로 식사를 하면서 밤에 친구와 채팅을 즐기고 굳이 큰 집이나 멋진 자동차가 없어도 또래 친구들도 갖지 못했기에 상대적 박탈감이 없다. 그래서 행복하다.

 

우리 연세중앙교회에 다니는 청소년들은 다만 위와 같은 이유에서 행복하다고 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아이들이 희망이 있어 행복하길 바란다. 예수님을 알고 진실로 만난 아이들은 그 전과는 매우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180도 변한 삶을 살아간다. 아이들은 아직 순수하기에 그 변화도 확연하다.

 

구원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아이들은 찬양 가사처럼 ‘장미꽃 가시에도 감사’할 줄 아는 믿음, 많은 결점을 지닌 자신을 주님께서 귀하게 보신다는 자녀의 믿음, 약할 때 더욱 강함 주신다는 믿음, 죄가 많지만 그 죄를 용서받고 있다는 믿음으로 무장하여 강해져 간다. 내 아이에게도 이런 믿음이 넘쳐 우리 주님의 희망이 되어 평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서봉선집사

(59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41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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