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사회로

등록날짜 [ 2015-01-26 18:06:04 ]

최근 활발하면서도 까칠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초등학생 다섯 명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나와 다른 점이 많은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는가?”

 

요즘 아이들의 특성을 생각할 때 당연히 부정적인 결론이 많이 나오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뜻밖에 한 명을 제외한 아이들이 ‘나와 다른 점이 많아도 친구가 될 수 있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끝까지 ‘아니오’라고 말한 소은이(가명)는 외동이었다.

 

지난해 말 일어난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건, 요즘 화제인 ‘어린이집 폭력’ 같은 사건들은 대부분 급하고 배려하지 않는 그릇된 행동에서 기인한 결과물이다. 물론 개인의 인격 부재 탓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거나 공감하지 못하고 자기 감정대로 행동해 일어났다.

 

흔히 유럽이나 일본은 배려하는 문화가 정착해 있다고 한다. 이들 국가는 근대로 접어들기까지 장원제, 군주제 같은 제도 속에서 집단과 사회질서를 우선시했다. 이런 토대 위에 개인의 삶보다는 서로 이해하고 배려를 강조하는 문화가 정착했을 것이다.

 

선진국 문화라고 하는 ‘배려’는 나와 함께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소통의 경로다. ‘배려’라는 열쇠는 사회 곳곳에 산재해 있는 쇠창살 같은 어떤 문제도 풀어 낼 수 있다.

 

혹자는 좋은 환경에 있는 자가 배려를 잘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게 돼 이해관계가 얽힐 경우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소은이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소은이는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친구들에게 관대하고, 이해심 많은 아이다. 공부나 예체능에서도 뛰어났다. 영리한 이 아이는 서로 다른 점이 많으면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알기에 그런 소모전을 피하고자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절대 친구가 되지 않겠단다. 표면상으로는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지만 상대를 위해 자신이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은 싫었던 것이다.

 

한편, 찬성 의견을 낸 아이들은 모두 형제나 자매가 있는 경우였다. 그중에 평소에도 까칠하고, 오빠와 갈등도 있는 미호(가명)는 아주 적극적으로 “다르니까 맞춰 가야 한다”고 말했다. 오빠와 자주 싸우기도 하지만 타협점을 찾고 서로 챙겨 주면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고 했다. 실제로 삶 속에서 다투고, 짜증 내면서 상대방에게 양보하며 맞추고 이해하며 배려한 경험담이었다. 이 아이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우리나라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는 희망을 보았다.

 

사람들은 기독교인을 더 높은 도덕가치 기준의 잣대로 평가한다. 이타적인 마음으로 배려하며 사는 데는 경우에 따라 피곤하고 어려움도 많다.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이 주께서 십자가 고난을 당할 때 부인하고 도망친 모습을 보면, 예수가 참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확실히 믿지는 못한 듯하다. 하지만 성령을 받은 후에는 모두 순교로 일생을 마쳤다. 영원한 왕, 하나님을 알았기에 말이다.

 

지금 내가 처한 환경과 위치가 높거나 낮아도 언젠가는 끝이 있다. 그 마지막 날에 주님 나라에서 하나님 자녀로 살 것을 생각하면, 어떤 환경에서라도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것이 버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받은 자답게 남에게도 그만큼 사랑할 수 있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이진숙 집사

(사무엘부 교사)
 

위 글은 교회신문 <42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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