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나의 가르침은 과연 옳을까

등록날짜 [ 2015-03-24 15:53:07 ]

학교에는 여러 형태의 따돌림 문제가 있다. 모두 싫어하는 ‘왕따’, 티나지 않게 따돌리는 ‘은따(은근히 따돌림 당하는 아이)’, 또 다른 친구들을 상대하지 않고 혼자서 생활하는 ‘스따(스스로 따돌림 당하는 아이)’도 있다. 이런 일들이 늘 사회적인 문제로 큰일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내 자녀가 만일 다른 아이를 아프게 한 아이라면, 또는 내 자녀가 다른 아이에게 뭇매를 맞았거나 다른 행동들로 큰 상처를 받았다면, 이런 일로 고민하지 않는 부모는 아마 없을 것이다. 내 아이를 훈계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대신 가서 앙갚음을 해 주고 싶을 만큼 미움이 생긴다. 그렇다면 만일 내 아이가 흠씬 두들겨 맞는 아이를 곁에 두고도 모른 체했다면, 우리는 그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었을까?

 

아마도 우리는 아이에게 “다시는 모른 체 하지 마라”는 말 대신, 그 자리를 피하라고 했을 것이다. 또 “다친 아이를 돌보라”고 가르치는 대신, “때리는 아이와 같이 있지 마라”고 가르쳤을 것이다. 만일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다면, 아이는 그날 양심에 큰 상처를 입으며 자존감까지 바닥으로 떨어졌을 것이 분명하다.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다. 옳고 정당한 것을 보면 그것을 따르고 싶어 하고, 옳지 못하고 부정한 것을 보면 맞서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 양심이다. 그 양심이 지켜질 때 아이들은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귀중하다고 여기며 더 귀한 존재가 되려고 애쓰기도 한다. 이를 ‘자존감’이라고 부른다.

 

자존감이 낮은 아이는 우리 사회에서 악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자라기 쉽다. 수많은 아동 범죄가 일어나는 이유는 아이가 자기 자신을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하는 존재로 여겨, 피해를 일으키는 자신의 행동을 오히려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존감이 높은 아이는 자신을 포함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는 사람으로 자신을 인식해 행동을 제어할 줄 알며, 스스로 발전하려고 노력한다. 이 모든 일은 가르침에서 시작한다.

 

만일 부모가 자녀에게 폭력이 일어나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약자를 보호하라고 가르쳤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이는 그날 힘껏 싸움을 말렸을 것이고, 그 끝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피해자에게는 가장 용기 있는 아이로, 가해자에게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근성이 있는 아이로, 또 자신에게는 가장 옳은 일을 한 하루로 기억되어 그의 인생은 자신감으로 가득했으리라.

 

우리의 가르침은, 사랑이란 다칠 수 있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과 자신에게도 이로운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반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에게 더 다가가서 혼자 있게 하지 말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꼽을 수 있도록 사랑을 주라고 가르쳐야 한다.

 

이 가르침을 받은 아이들은 부모 품을 떠나 각자 위치에서 서로 사랑할 줄 알게 되고, 경쟁으로 인한 강한 스트레스에서도 서로 지지하며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학교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랑하면 오히려 모든 것을 가지게 된다. 사랑하기 때문에 버려야 하는 것이 있었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라희정 집사

(71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42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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