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5-05 23:07:46 ]
#1. 며칠 전 삼일예배를 다녀와서 6살, 4살 꼬맹이들을 챙기고, 씻기고, 옷 입히고 일상적인 하루를 마감하느라 가족 모두 분주했다. 잠들기 아쉬워하며 마지막 소동을 일으키는 아이들의 소란 틈에 샐쭉한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서로 대화가 필요한 것 같지 않나요? 요즈음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 같아요.” 아내의 목소리였다. 나는 어색하고, 미안한 미소를 지었다. 아내의 요청에 진심 어린 호응을 해 주고 싶었는데 이런, 그만 잠이 들어 버렸다. 결혼 16년 차 부부의 일상적인 삶의 패턴 속에 ‘대화다운 대화’의 자리가 참으로 없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다음 날은 아이들을 재우던 아내가 먼저 잠들어 버렸다.
#2. 남자는 하루 평균 1만 단어를 사용하고, 여자는 하루 평균 2만 5000단어를 사용한다. 통계의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남자보다 여자가 다양하게, 많이 말을 한다는 사실에 토를 달 사람은 없어 보인다. 재미있는 상황을 설정해 보자. 어린 자녀가 둘 있는 맞벌이 부부다. 남편은 1만 단어를 집 밖에서 다 쓰고 집에 들어와 이제는 쓸 말이 없다. 아내도 직장에서 1만 단어는 족히 썼다. 그런데 아직도 써야 할 1만 5000단어가 남아 있다. 퇴근하는 길에 친구랑 길게 통화하면서 5000단어, 집에 와서 아이들과 놀면서 5000단어를 써도 5000단어가 남아 있다. 이제 옆에는 단어 사전이 ‘방전’된 남편만 있다.
#3. 내 삶의 우선순위에서 ‘부부의 대화’는 몇 위쯤인지 물어본다. 회사 업무는 먹고사는 문제가 달린 일이다. 어린아이들은 우선 챙겨 줘야 한다. 공과금은 과태료를 물기 전에 내야 한다. 이사 갈 집도 당장 알아봐야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부부의 대화’는 어느새 순위 밖에 놓인다. ‘언제라도 대화할 수 있으니 괜찮겠지’ 하다가 얼굴도 까먹겠다. ‘한 몸이니 다 잘 알아서 하겠지’ 하다가 마음의 병이 든다. 우리 세대 부부에겐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 세대처럼 전쟁과 가난 속에 서로 의지하고 목숨을 지켜 낸 의리도, 경험도 없지 않나? 그러니 경상도 부부의 저녁 대화라는 우스갯말처럼 “밥 문나?”(밥 먹었나?), “아는?”(아이들은?), “마 자자”(이제 그만 자자) 이 세 마디 말로는 절대로 충분하지 않다. 이쯤 되면 웬만큼 ‘작정’하지 않고서 부부 사이에 ‘대화다운 대화’의 물꼬를 트기가 쉽지 않다.
#4. 삶의 우선순위에서 ‘하나님과 대화’는 어디쯤 있는지 물어본다. 회사 일, 아이들, 각종 세금, 집안일이 ‘하나님과 대화’를 가로막고 있는 모양새가 ‘부부의 대화’와 비슷하다. 그냥 두면 무관심한 관계가 될까 봐 덜컥 겁이 난다. 그런데 참 다행이다. 우리 교회 전 성도가 참여하는 ‘전 성도 40일 그리고 10일 작정 기도회’가 있어서. 내가 결심하지 못하니 우리 교회를 통해서 주님이 작정케 하셨다. ‘작정’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마음에 와 닿기도 처음이다. ‘너와 요즈음 대화다운 대화를 못한 것 같구나’라는 주님의 요청이요, ‘방전’된 내 영적인 상태를 정확히 아시고 급속 ‘충전’해 주시려는 주님의 처방이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마7:7). 약속하신 주님의 뜻 앞에 ‘작정’하고 성전에 모여 기도하는 우리 성도들의 모습이 무척 감격스럽다. 주님께서는 또 얼마나 기뻐하실까? 이제 나도 ‘작정’하고 주님과 마음껏 대화하고 주님을 사랑해야 겠다.
김기환 집사
위 글은 교회신문 <43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