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무능이 죄다

등록날짜 [ 2015-06-16 14:45:00 ]

#. 느티나무가 미적거리는 새, 환하게 하얀 꽃을 터뜨려 진한 향을 날리는 것은 아카시아다. 때이른 오월 더위로 풍부한 일조량을 뿌리부터 가지 끝까지 차곡차곡 채우던 플라타너스가 이제야 게으른 기지개를 켜며 여린 순을 내민다. 플라타너스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 순결한 목련을 보았니? 개나리의 노란 웃음은? 아스라이 피었다가 분분히 바람 속에 제 몸을 아낌없이 던져 버린 벚꽃은? 여린 가지에 오종종히 줄 맞춰 돋아난 버드나무까지 말이야. 그래 그래. 느릿느릿 피어나며 다 보았을 테지?”

 

플라타너스가 언제부터, 왜 가로수가 된 걸까. 플라타너스는 가장 늦게 잎을 내면서도 눈 깜짝할 새 자라 여름을 나는 동안 꼭 한 번은 가지치기를 해 줘야 할 만큼 무성하게 자란다. 열매가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다. 단풍이 곱게 드는 것도 아니다. 아니, 가을 문턱에 닿기도 전부터 누렇게 퇴색해 떨어진다.

 

 

#. 메르스(중동호흡기중후군)로 학교들이 휴교하고 회사들도 더러는 그런다고 한다. 쉰이 다 된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이었다. 지난 사반세기를 지나며 선진국 문턱에 다다른 줄 알았는데, 이번 재난을 겪으며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확인했다. 씁쓸하다. 이번에도 ‘골든타임’을 놓쳤다지. 제때에 제대로 대처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인가 보다.

 

상황 판단이 안 돼서일 수도, 정보가 부족해서일 수도, 책임자의 무능함 때문일 수도 있다.

엊그제 담임목사님께서 ‘착하다’라는 말이 ‘욕’이라는, 나의 지론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아이들이 어릴 때 놀이공원에 가면, 내게 카메라를 불쑥 내밀며 사진을 찍어 달라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여보, 내가 사진 잘 찍게 생겼나 봐요?”라는 내 질문에 남편 왈, “그게 아니라 부탁하면 거절하지 않을 것 같아 그렇지”라며 어이없어한다. 그 후로도 ‘착함’이 악용되는 세상을 많이 봐와서인지 내게는 착하다는 말이 정말 ‘욕’으로 들린다.

 

 

#.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지는 3년 전 대동맥 박리로 스텐트를 삽입하는 혈관 시술을 받았다. 그 후 혈관들이 몇 차례 터져 피부밑에 피가 시커멓게 고이는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장기간 흡연으로 혈관이 약해진 탓이란다. 아버지는 때때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것은 물론 흡연 금지령에 대비해야 했다.

 

결국 병원에서 소개해 준 요양병원으로 아버지를 옮겼다. 처음엔 화장실 출입은 혼자 하셨지만 이제는 간병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신다. 걸어 다니다 조금만 부딪혀도 혈관이 터질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병원의 조치에 따른 것이다. 아버지는 1년이 넘는 세월을 그저 침상에 누워 있다가 식사 시간에만 간신히 몸을 일으키는 것이 움직임의 전부가 됐다. 그런 아버지를 휠체어에 모시고 모처럼 병원 입구에서 햇볕을 쬐니 무척 좋아하신다. 얼마 만에 바깥 구경을 하시는지, 눈물을 보였다. 참 내가 무심했구나.

 

 

#. 가정에서 자녀가 자녀다울 때, 행복하다. 사회 조직에서도 착하기만 하고 일을 못하는 사람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시민은 시민다워야 하고 국가는 국가다워야 한다. 나무는 과실을 낼 때, 존재 이유가 있다. 플라타너스를 나무라는 게 아니다. 송아지도 제 어미를 닮고 나는 내 부모와 많이 닮았다. 그런데 지옥 갈 죄를 속해 주는 영원한 생명의 피를 수혈해 준 예수 그리스도와는 비슷하지도 않다. 발가락이 닮았다는 억지라도 써 보고 싶은 날이다.


정성남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3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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