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놀이의 장이 아쉬운 이때

등록날짜 [ 2015-10-15 12:22:37 ]

# 동네에 작은 소동이 났다.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중학생 대여섯 명을 앉혀 놓고 이것저것 조사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이야기한다. 사건의 내용은 단순하다. 어른들도 어릴 때 한두 번쯤 해 보았을 ‘벨 누르고 도망가기’. 요즘 아이들 말로는 ‘벨튀’라고 하는데 아마도 벨을 누른 후에 마구 도망간다는 뜻이리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장난 삼아 빌라 어느 집 하나를 정해 집중해서 ‘벨튀’ 한 모양이다. 
 
재미있다고 번갈아 가며 ‘딩동딩동’ 벨만 누르는 것이 아니라 ‘쾅쾅’ ‘콰쾅쾅’ 현관문까지 두드리고 ‘우당탕탕’ 도망치기를 여러 번. 며칠간 계속된 벨튀에 노부부는 놀라고 화나고 두려운 마음으로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철없는 아이들의 못된 놀이에 자기 집 안에서 놀란 가슴을 누구한테 하소연할까? 아이들은 자기들의 놀이가 누군가를 공포에 떨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을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놀이가 될 수 없다는 교훈을 마음에 새기었을까? 
 
# 초등학교 시절, 요즘처럼 하늘 높고 날씨 좋은 가을날이면 수업이 끝난 학교 운동장은 친구들과 맘껏 뛰어노는 놀이터가 되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삼삼오오 모여든 아이들은 술래를 정하고 ‘다방구’나 ‘얼음땡’ 같은 놀이를 시작했다. 헉헉 숨이 차도록 실컷 달렸다. 
 
옷이 땀으로 흥건히 젖었을 즈음, 누군가 단단한 나뭇가지 하나 주워 와서 운동장 흙바닥에 이렇게 저렇게 선을 그으면 사방치기, 땅따먹기, 개뼈다귀 같은 놀이판이 완성되고 다시 놀이가 시작되곤 했다. 공깃돌 다섯 개만 있으면 친구들을 모으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간단한 기술만 있으면 누구나 공기놀이에 낄 수 있었다. 
 
동네골목에서 분꽃화분이라도 만나면 그날은 재미가 배나 더했다. 나팔처럼 활짝 핀 노오란 분꽃, 분홍빛 분꽃을 조심스럽게 따서 아랫부분을 엄지와 검지로 살살 비벼 당기면 몇 가닥 가는 꽃수술대가 쭈욱 빠져나오는데, 나팔처럼 벌어진 꽃잎을 아래쪽으로 향하게 늘어뜨리고 동그란 씨방 부분을 조심스레 귓구멍에 끼우면 찰랑찰랑 제법 멋진 귀걸이로 변신한다. 분꽃귀걸이로 단장한 꼬마 소녀들은 다시금 소꿉놀이에 빠져들었다. 
 
봉선화 물들이기는 또 얼마나 재미났던가! 과정 하나하나가 놀이였다. 먼저 봉선화 잎과 꽃을 모아 명반을 조금 섞어 촉촉해질 때까지 콩콩 찧는다. 그다음 열 손가락 손톱 위에 봉선화를 동글동글 뭉쳐 올리고, 준비해 놓은 비닐과 하얀 실로 잘 싸고 칭칭 감는다. 피가 잘 안 통하는지 손가락마다 욱신욱신 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가까스로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열 손가락 끝을 쳐다보는데, 손가락 끝에 남아 있어야 할 도톰한 봉선화 비닐들은 다 도망가고 없다. 이불 속에서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그것들을 찾아낼 때마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손톱뿐 아니라 손가락 끝 전체가 주황빛으로 물든 그날 아침, 어린 시절 추억 한 장도 주황빛으로 곱게 물들었다. 
 
# 놀이는 배움이고 성장이다. 아이들은 재미있게 놀면서 친구들과 함께 몸과 마음이 훌쩍 자란다. 놀이에 특별한 준비가 필요하지는 않다. 나 아닌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건강한 몸과 마음과 생각이 있으면 충분하다. 컴퓨터 게임이나 스마트폰과 대면해서 놀 줄은 알지만 부모님, 선생님, 심지어는 친구들에게도 감정과 생각 표현이 서툴기만 한 우리 아이들에게 서로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놀이의 장을 만들어 주고 싶다. 생각이 바른 건강한 다음 세대로 잘 자랄 수 있도록 말이다.


오미정 집사
(유아부 교사)
 

위 글은 교회신문 <45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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