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04-07 17:00:50 ]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아이 많은 집 이야기를 보았다. 인형같이 예쁜 아이들, 야구 같은 ‘팀 경기’도 가족이 편을 갈라 너끈히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나도 저렇게 아이를 많이 낳아 단란한 가정을 꾸려야지’ 하고 생각했다.
막연한 바람이 어느새 일상이 돼 버린 것일까. 침대 위에 아기 천사 둘이 잠들어 있다. 옆방에서는 아기가 칭얼대며 “엄마”를 찾는다. ‘어머나, 어느새 아이를 이렇게 많이 낳은 거지?’ 그때가 서른두 살이었다.
그랬다! 어쩌다 ‘어른’이 되고 어쩌다 ‘엄마’가 되고 어쩌다 ‘서른’이 되었다. 정말 어쩌다 보니.... 서른이 되면 무언가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질 줄 알았지만 그 역시 흘러가는 시간의 단편이었다. 당시 월간지에서는 ‘스물아홉에 준비해야 할 것들’ 리스트를 나열했다. 목록을 읽어 보니 그다지 무겁지 않았다. 다만 ‘으음, 서른을 앞두고 검정 정장을 하나는 장만해야겠군’ 하고 넘겼다. 그 때부터는 주변의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는 일이 종종 생길 테니.
나이 서른을 ‘입지(立志)’라 한다. 뜻을 세운다는 말이다. 열다섯에 학문에 힘쓰고 서른이 되어서야 무언가를 이룰 뜻을 세운다니, 필자가 살아온 세월과는 괴리감이 없지 않다. 공자의 글이니 낡은 옛말이라 치부해 버릴 수 있지만 작금의 세태를 사는 젊은이들은 절로 고개를 주억거릴 만하다. 바늘구멍 같은 입시를 통과해 대학 시절을 처절한 스펙 쌓기로 보내고 나서도 원하고 바라는 직장이 어서 오라고 맞아 주지 않는다. 서른에 그저 밥 벌어먹을 직장만 구해도 참 다행인 세상이다.
어쩌다 서른이 된 나나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과 달리, 시작부터 견고한 뜻을 세우고 쉼 없이 달려온 이가 있다. 바로 연세중앙교회다.
우리 교회가 바야흐로 서른 살이 되었다. 줄기차게 영혼 구원이라는 굳은 뜻을 품고 달려왔다. ‘이 땅에 불신자가 있는 한 우리 교회는 영원한 개척교회’라는 교회가(敎會歌)의 가사가 잘 대변해 준다. 뜨겁게 부르짖어 기도하던 연희동 지하성전을 거쳐 ‘화요정기집회’로 청년부가 부흥하던 망원동 시절, 그리고 노량진 주일 예배가 4부로까지 늘어난 포화상태에서 마침내 궁동 시대를 열어 왔다. 그런 역사를 ‘연세중앙교회 30년사’에 고스란히 담았다. ‘하나님이 쓰신 사람들과 그 날들’이라는 제목이 말해 주듯 하나님이 하신 일을 오롯이 기록하고 영광을 올려 드리기 원해 성도들의 충성으로 빚어낸 작품이다.
놀라운 것은 30년간 담임목회자를 비롯한 성도들의 구령의 열정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 주님 심정으로 무장한 담임목사는 30년을 한결같이 성도들을 절절하게 사랑한다.
매년 동.하계 성회를 열고 실천목회연구원을 운영하며 절기마다 집회를 여는 교회, 설과 추석에도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노심초사하며 성도들의 영혼 지키기에 여념이 없는 목회자, 강단에 서신 담임목회자의 애끓는 중심을 알기에 기도하며 전도하며 주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성도들, 이게 어엿한 청년이 된 연세중앙교회의 모습이다.
앞으로도 그 뜻 가운데서 우리 교회를 쓰실 하나님의 섭리를 기대해 본다.
정성남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7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