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06-21 13:58:18 ]
‘돈 한푼 안드는 보험, 안전띠!’
출퇴근 때 이용하는 외곽순환고속도로의 한 터널 입구 전광판에 자주 뜨는 문구다. 사실 캠페인 문구의 내용보다는 띄어쓰기가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이 내 신경을 더 자극했다. ‘한 푼’과 ‘안 드는’으로 써야 한다는 생각이 그 문구를 볼 때마다 스쳤다.
어제도 오늘도 외곽순환고속도로를 이용하려고 인터체인지로 진입하는데, 경찰관이 안전벨트 미착용 단속을 실시하고 있었다.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 아스팔트와 타이어 가루를 고스란히 코로 들이마시면서 말이다. 쌩쌩 달리는 차 소리는 또 얼마나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지.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자니 안쓰럽기까지 했다.
시내 도로에서는 잘 볼 수 없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졸음 방지’와 ‘안전벨트 착용’에 관한 캠페인 문구를 많이 보게 된다. 졸리면 제발 쉬었다가 가라고,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해서 안전벨트는 전 좌석에서 꼭 매 달라고 애원을 한다. 왜 이렇게 처절하리만큼 부탁하는 걸까?
최근 대대적으로 음주단속을 할 것이라고 미리부터 떠들썩하게 광고를 했는데도 단속 첫날에 엄청나게 많은 음주운전자들이 적발됐다고 한다. 그들은 음주단속을 한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아니면 알고 있었지만 자신은 절대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이런 음주운전이나 안전벨트 미착용 단속을 실시하는 것은 과연 과태료를 물려서 세수를 확보하려는 목적일까?
최근 이틀에 걸쳐 5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교통사고를 5건이나 목격했다. 살아오면서 단기간에 가장 많이 본 셈이다. 하루는 아주 더운 날이었고, 하루는 비가 쏟아진 날이었다. 더운 날에는 나른해져서 그런지 서행 중 추돌사고가 많았고, 비가 오는 날에는 시야 확보가 원활하지 않은 데다 서로 먼저 가려다가 충돌한 사고인 듯했다. 약간만 주의를 기울이고 양보했다면 사고까지 가지 않았을 텐데. 물론 좋아서, 또는 일부러 사고를 내는 사람은 없을 테다.
최근 목격한 교통사고는 비교적 가벼운 사고들이었다. 그런데 교통사고가 이렇게 가볍게만 나지는 않는다. 수개월 전 수술한 오빠 병문안을 갔을 때 6인실 병실에서 스스로 걸을 수 있는 환자는 오빠 한 사람뿐이었다. 의식 없이 누워만 있는 환자가 3명이었는데, 원인은 모두 교통사고였다.
아무 의식 없이 눈만 뜨고 있는 환자에게 아내와 딸, 간병인이 돌아가면서 계속 말을 걸었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 가족이 당하는 고통을 생각하니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졸릴 때 잠깐 쉬고, 좀 답답해도 안전벨트를 매고, 여유를 갖고 과속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다.
우리의 현실은 수많은 사소한 선택이 모여서 이뤄진다. 단속을 하고 과태료를 물리는 일련의 사소한 일들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단속에 걸리지만 않으면 되는 건 아닐 터. 사소하지만 기본을 지키는 것이 자신과 가족을 위하는 일이다. ‘세수 확보’라며 삐딱하게 바라볼 것도 없다. 세수 확보이건 사회적 비용 절감이건 상관없이 사고가 나면 당장 내가 손해를 본다.
일상생활 가운데 사소하지만 지켜야 하는 기본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좀 돌아봐야겠다. 그리고 연초에 마음먹었던 한 해 동안 꼭 이루고 싶었던 소소한 목표들도 점검해야겠다. 이제 반 달려왔으니.
아차, 기도하러 가야겠다.
김영희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8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