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아버지의 그늘

등록날짜 [ 2016-09-27 14:12:49 ]

훠어이! 훠어~! 저리 가! !”

머릿속까지 흔들리게 소리를 내지른다. 팔순 노부(老父)의 힘없는 목소리를 비웃듯 전깃줄 위 에 앉은 비둘기들은 꿈쩍하지 않는다. “새 떼 때문에 콩이고 팥이고 다 망친다.” 아버지의 넋두리를 듣자니 짜증스러웠다. 농사일은 모두 어머니 몫이었다.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끔씩 아버지에게 원망을 돌리곤 했다.

검게 그을린 피부 위로 울툭불툭 튀어나온 핏줄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우리 아버지. 백발에 굽은 손가락은 세월의 흔적이다. 몸 아프시니 아쉬운 일이 있어도 조근조근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 짜증을 곧잘 내신다. 스무 살 적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눈물 흘렸는데 마흔을 넘긴 지금은 무심해졌다. 변한 내 모습이 초라하다.

아버지는 내가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 어머니와 함께 예수를 믿으셨다. 농번기 때도 부흥회까지 쫓아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셨다. 명절에 흰돌산수양관 성회에서 말씀 듣고 은혜받으셨다. 그 시절에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이제는 예수 믿는 일밖에 없어.” 거기다 한마디 보태셨다. “십년만 일찍 예수를 믿었더라면.” 요즘은 아버지입에서 그런 믿음의 고백을 듣기 어렵다. 총기가 약해지셔서 자식들 기도의 우선순위는 늘 아버지다. 꼭 천국 가셔야 하는데.

버럭대장인 아버지 곁에 잘 참아 내는 어머니가 계신다. 어머니는 언제나 하루를 기도와 새벽예배로 시작한다.

농사일이 힘들고 고되지만 잡생각 않고 기도 할 수 있어 좋아하시는 어머니. “이 나이에 혼자라면 얼마나 외롭고 힘들겠느냐시며 말끝마다 함께하시는 주님께 감사해 하신다.

아버지께 여쭤 보았다. “자식들이 드리는 용돈이 넉넉잖아서 여태 농사일을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아니라고 하신다. “지금까지 잘 살아오게 하시고, 자식들 보살펴 주신 은혜가 감사해서 하나님께 예물 드리고 싶어서 그러지.”

그랬다. 아버지는 은혜받을 때마다 당신은 진작 죽었어야 할 몸인데 하나님 은혜로 살아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어릴 때 항상 힘없고, 자주 아팠다. 식구들은 게을러서 그런 줄 알고 타박했단다. 예수를 영접하신 후에 엑스레이 촬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의사가 묻더란다. 폐 한쪽이 새까맣게 됐는데 폐병을 앓은 적이 있었느냐고. 그때 깨달으셨단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키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셨다는 것을. “예전엔 폐병이 얼마나 무서운 병이었느냐? 그때 죽었으면 딱 지옥인데, 예수 믿고 천국 가라고 살려 주셨으니, 그 은혜 감사해서 예물 드리려고 아무리 힘들어도 농사일을 접을 수 없어.”

일찍 할머니를 잃고 가장 역할을 제대로 못 하신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신 아버지. 하나님은 그런 아버지의 그늘이 되어 주셨다.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세상 풍파 잘 견디게 늘 품어 주셨다.

아버지는 호랑이같이 무서웠지만, 어릴 때 병약하던 내게는 가끔 안식처가 되어 주셨다. 아파서 축 늘어져 있으면 약을 사다 주시고, 아버지 방에 데려가 자리를 펴 주었다. 잠자면서 땀 푹 내라고.

지금도 아버지는 여전히 호랑이처럼 무서우시다. 건강하시지는 않지만 하나님 은혜를 기억하시니 그저 감사하다. 하나님 은혜를 못 잊어 항상 감사할 마음 지닌 우리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그늘이 있어 감사하다. 팔순 고개 굽이굽이 인도하시면서 아들 예수의 피로 죄 사하시고 보살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광대한 그늘이 있기에 더 크게 감사하실 것이다.

내 아버지가 예수님의 피를 꼭 붙들고 천국 가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그늘에 붙들려 있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이진숙 집사

53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49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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