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10-06 15:39:49 ]
결혼한 지 5년 됐다. 첫째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결혼하기 전과는 전혀 다른 낯선 일상을 경험 했다. 아이를 낳는 고통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침에 울고 보채는 아이를 어르느라 밥 한 숟갈 뜨지 못했다. 낮잠 잘 기미가 보여 자리에 조심조심 누이면 엄마 품이 아닌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이내 깨서 운다. 온종일 굶다가 아이가 꿈나라에 간 한밤에야 식사할 때가 잦았다. 몸살감기로 앓아누웠다가도 아이의 뒤척임에 벌떡 일어나 기저귀를 갈거나 젖을 주곤 했다. 허리가 뒤틀려 절뚝거리면서도 아이를 번쩍 들어 안고 다녔다. 그런 날은 밤새 끙끙 앓기 일쑤였다. 자녀가 주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갓난쟁이들과 보낸 몇 년은 나를 포기하는 힘든 시간이었다.
그런 내게 하나님께서는 네 살, 두 살짜리 사랑스러운 딸을 주셨고 지금도 태중에서 한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내 또래 교회 자매들은 두 살 터울인 아이를 키우는 나를 볼 때마다 치켜세워 준다. “정말 대단해요! 지금도 힘들 텐데 어떻게 셋째 낳을 생각을 했어요?” 그럴 때마다 손사래를 치며 고백한다. “아니에요. 저처럼 못난 엄마에게 귀한 자녀를 셋이나 주신 하나님이 대단 하셔요.”
입바른 말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만약 결혼하기 전 시절로 돌아갈 기회를 준다고 하면 나는 단연코 “아니요”라고 거절할 것이다. 자녀를 둘 낳고 키우면서 예전에는 알 수 없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주일, 첫째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교회 구석구석 있을 만한 장소를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놀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은 아닐까? 찻길 까지 나갔으면 어쩌지? 모르는 사람을 쫓아가진 않았겠지?’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해지고 온몸이 떨렸다. 조금이라도 안면 있는 교우를 만나면 사정을 얘기하고 아이를 보면 꼭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를 잃어버린 지 한참만에야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아이를 찾았어요!”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한달음에 아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애태운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듯, 아무렇지 않게 멀뚱히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서야 긴장이 풀렸다. 그동안 애간장을 졸인 탓에 아이를 혼내려 다그치려는 순간, 마음속에서 성령님께서 물으셨다.
‘아이를 잃어버리니까 그렇게 걱정되고 가슴 아팠니? 네게 맡긴 영혼들을 잃어버렸을 때는 얼마나 가슴 아파했니?’
예상치 못한 성령님의 음성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펑펑 쏟아 냈다. 내게 맡겨진 귀한 영혼들이 방황할 때 내 자녀를 잃어버린 것처럼 가슴 아파하지 못했고, 전도할 때 비신자들을 바라보면서 애통해하지 못했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했지만, 내 중심에 우리 주님이 죽기까지 그들을 살리고자 한 구령의 열정은 없었다. 외식하는 내 모습에 하나님은 얼마나 아프셨을까.
그날 이후로 전도 나가기 전이나 여전도회 자매들을 위해 기도할 때면, 하나님께 더욱 간절히 구한다.
‘하나님, 내 아이를 잃어버려서 가슴 아팠을 때처럼 이들을 향한 애절한 하나님의 마음을 제게 주세요.’
10월 23일 ‘이웃초청 예수 사랑 큰잔치’를 앞두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기 도하고 전도해서 예수 믿지 않는 골육 친척들이 모두 주님 품으로 돌아오길 소망한다. 아버지의 마음이 나를 사용하시리라.
/정주영 집사
74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49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