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12-08 11:58:04 ]
혼란한 국정 사태, 이 또한 밝혀지리
자연에서 배우는 생각과 마음 지키기
눈과 귀가 피곤하다. 마음도 너덜너덜해졌다. 보는 것, 듣는 것이 모두 놀라움과 분노뿐이다. 이게 자고나면 새로운 의혹이 불거져 끝이 안 보인다. 그렇다고 판도라의 상자처럼 두려워 피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이 일을 기회 삼아 낱낱이 캐내어 잘못은 엄정하게 다스려야 한다.
인간은 왜 부패하는가, 무엇이 인간을 부패하게 하는가, 권력인가 아니면 돈인가, 인간은 어디까지 인간의 존엄을 버리고 고꾸라지는가, 정말 민주주의는 촛불로 오는 것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답답함에 한숨 섞인 기도를 하는데, 저기 저 혼자 빨갛게 불타고 있는 단풍이 있다. 이 계절을 몽땅 빼앗겨버린 우리를 나무라듯 나날이 붉은 빛을 덧칠하며 날 좀 봐 달라고 한다. 아니 날 보며 마음을 좀 다스리라고 하는 것 같다. 그래, 가을이었지!
내가 사는 곳은 나무들이 한 세대만큼 몸피를 불리고 품도 아주 넓어서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하늘을 보기 어렵다. 4월 지천으로 벚꽃 잎이 날려 마치 눈이 온 듯하더니 이제는 단풍으로 눈길이 바쁘다. 덩달아 스마트 폰도 바빠졌다. 놓치기 아까운 풍경을 담은 사진이 차곡차곡, 어느새 일년이 빼곡히 들어앉았다.
“엄마, 왜 대통령이 하야를 안 해?”
사태를 종합해 제법 합리적인 결론을 내놓아 사람을 깜짝 놀래키는 구석이 있는 막내가 툭 던지는 한 마디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대학 졸업을 앞둔 큰아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서울에서 의경으로 복무 중인 둘째는 역사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느끼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나무들은 저마다 가을빛을 발산하며 미련 없이 잎을 떨군다. 영국이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했을 때는 마치 지구 경도가 1도 더 기울어진 줄 알았다. 미국 대선에 세계가 놀라고 요동쳐도 하늘은 무심하게 파랗다. 68년 만에 슈퍼 문(super moon)이 뜨고, 앞 동에는 두 집이 이사하고, 어르신들이 하나둘 본향으로 돌아가고, 아기들은 더디 태어난다. 경주에는 종종 지진이 나고, 북핵이니 사드니, 삼성과 현대가 휘청하고, 서민들 주머니는 여전히 가난하다. 우리는 어쩌다 ‘단풍 들었다’고 말하게 되었을까. ‘은행 들었다’고 하지 않고. 은행의 노란 물보다 단풍의 붉은 빛이 더 강렬해서 ‘단풍’이라는 단어가 힘을 얻은 것일까. 뜬금없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난다.
낙엽이 뒹구는 길은 아름답다. 은행나무 가로수 길은 눈조차 환해진다. 단풍이 많은 그곳은 이글거리며 황홀하다. 여기 주렁주렁 달린 건 담쟁이 열매다. 여름내 무섭게 땅따먹기를 하던 담쟁이는 핏줄 같은 줄기만 남았다. 그래도 그 위세가 자못 무시 못 할 만하다. 잎들이 지고 나니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은행이, 고욤이, 산수유 붉은 열매가.
물든 잎은 아름다울지언정 본질이 아니다. 수많은 의혹과 음모가 걷히면 진실이 드러나리라. 참어른이 없고 이 총체적 난국을 헤쳐 나갈 혜안을 가진 이가 없어 육사(陸史)가 기다리던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라도 기다려야 하려나. 눈 멀고 귀 시끄러운 세상이다. 묵묵히 제자리에서 소임을 다하는 자연에서 배우자.
/정성남 기자
신문발행국
위 글은 교회신문 <50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