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마음은 그게 아닌데

등록날짜 [ 2017-02-28 16:22:46 ]

딸 허리디스크 치유하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닌 아버지
요즘도 딸 위해 손주 돌봐주시는데
감사는커녕 자주 불효하게 돼


스물두 살. 하고 싶은 것 많고 꿈도 많던 시절에 그만 허리디스크가 도졌다. 엉덩이에서 발목에 이르기까지 기분 나쁜 통증이 앉아도 서도 누워도 사라지지 않았다. 극심한 통증 탓에 2~3시간밖에 못 잤다. 어떤 날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신경은 갈수록 예민해졌다. 어느새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그때 아버지는 나보다 더 아파하셨다. 내가 중학생이던 무렵, 이미 디스크에 걸리셨던 아버지는 그 극심한 통증을 알고 계셨다. 하지만 디스크 수술비용이 비싸 본인은 수술받지 않으셨는데도 딸은 어떻게든 낫게 해주시려 디스크로 유명한 병원을 모두 알아보셨다. 여러 병원을 찾아 치료받고, 디스크로 명성 높은 대학병원에서 수술까지 받았다. 하지만 수술 후에도 하루에 약 36알을 먹어야 했다.

그러나 질병 덕분에 주님을 만났고, 연세중앙교회를 만났다. 죄로 죽을 수밖에 없던 내가 살았다. 디스크라는 질병을 고침받고 이렇게 건강하게 마음껏 영혼 섬기는 직분자가 됐다. 내가 디스크로 아파할 때 나보다 더 가슴 아파하시던 아버지는 지금도 여전히 목과 허리 디스크로 고통을 겪고 계신다. 대수술 두 번 후, 허리·다리·목의 통증 탓에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어려워하시고 자주 주저앉으신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늦게 퇴근하는 딸을 위해 교회 근처로 이사하셔서 손주 셋을 돌봐주신다. 선교원에서 돌아오면 늘 배고파하는 손주들 먹이시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직접 간식을 사서 챙겨주신다.

금요철야예배를 마친 어느 날, 아이들을 두고 가라고 하셨다. 딸이 피곤해 보였는지 집에 가서 푹 쉬라는 뜻에서였다. 토요일 오전까지 푹 쉬고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는 혼자 아이 셋을 데리고 자장면 사주러 오류역에 간다고 하셨다. 집에서 오류역에 가려면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간 뒤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을 더 가야 한다. 아버지 혼자 몸도 거동이 어려운데 아이 셋을 데리고 가려면 무척 힘드실 듯했다. “집에 계세요.” 다급히 말렸지만 굳이 나가려 하시기에 바로 친정으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오늘 따라 몸이 힘들고 아프구나”하셨다. “그렇게 아프신데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가시려고 했어요? 그냥 배달시켜 먹이면 되죠.”

짜증 섞인 말투와 표정에 아버지는 기분이 언짢으신 듯했다. 결국 아버지는 안 가겠다고 화를 내셨고, 나는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아이 셋을 데리고 집으로 와버렸다.

집에 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후회됐다. 아버지는 손주 맛있는 것 먹이려 하신 건데…, 아이들 돌봐주어 토요일 오전까지 푹 쉬게 해준 아버지께 감사하다는 인사는 못 할망정 되레 짜증을 내다니….

용서해달라고 하고 싶은데 아직도 못된 고집과 자존심이 아버지께 찾아가지 못하고 용서를 빌지 못하게 한다. 부모님께 효도는커녕 내가 잘나서 어른 된 것처럼 착각하고, 부모님 마음을 무참하게 무시하고, 하고 싶은 말 다해 가면서 가슴 아프게 한 죄를 깨닫고 보니 자신이 너무 초라했다.

‘아버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아버지, 사랑해요.’ 꼭 아버지께 찾아가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야겠다.



/서지연 집사
79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51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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