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7-04-13 15:26:09 ]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는 학생 보며
하나님께 회개하는 내 모습 돌아보게 돼
교단에 선 지 2~3년 남짓했을 때쯤 일이다. 하루는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데, 계속 바닥만 보고 있는 학생이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감히(?) 내 수업 시간에! 그 당시 학급 규칙으로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교과서 외 다른 물건을 꺼내 놓으면 압수했다.
그 학생에게 조용히 다가가 눈앞에 손을 내밀었다. 학생은 멈칫하더니 내게 ‘한 번만 봐 달라’는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 ‘잘못하면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확실히 가르쳐 주고 싶은 신규 교사 앞에 그런 눈빛이 통할 리 없다.
“책을 받고 싶으면 6교시에 오세요.” 6교시 후 그 학생이 책을 받으러 왔다. 사실 그 학생이 왔을 때 “선생님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조심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먼저 나오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 책 주세요.” 너무나 당당한 학생 모습에 어이없어 되물었다. “내가 왜 책을 줘야 하지?” “그거 친구가 도서실에서 빌린 거예요. 오늘 안 갖다 주면 제가 물어 줘야 돼요.” 이 아이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는 것일까. “너는 학급 규칙을 어겼어. 그 대가로 선생님이 책을 가져간 거야. 물론 다시 돌려줄 생각이었지. 그런데 너는 수업 시간에 책을 읽은 점이 아무 문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구나.” “아, 잘못했어요.” “그럼 선생님께 뭐라고 말을 하면서 책을 달라고 해야 하니?” “선생님,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빨리 책 주세요.” 죄송하다고 말했으니 빨리 책을 달라니. 이것은 어느 나라 사과법인가. 정말 죄송한 마음에서 우러나왔다기보다 밖에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기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만 가득해 보였다. 자리에 앉히고 이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리고 선생님 마음이 어떠했는지 알려주었다. 내 말을 듣고 난 학생은 뭔가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말을 꺼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
개운하지 않은 반성이었지만 그래도 진심이 조금이나마 느껴져 책을 주고 돌려보냈다.
이 학생을 지도하면서 사실 나 자신의 모습이 보여 한없이 부끄러웠다. 내가 주님 앞에 회개할 때 모습은 어떠한가. 회개한다고 하지만 그 중심을 잘 들여다보면 ‘회개 안 하면 지옥 간다고 하니까, 회개 안 하면 일이 안 풀리고 지금 하는 기도가 응답 안 될 것 같으니까 빨리 용서해 주세요’라는 속내가 보였다.
회개는 내 죄로 말미암아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찢어 죽여야 하는 아버지의 상한 마음, 내 죄를 지고 온갖 고통을 당하시는 아들 예수의 상한 마음, 내 안에 계시면서 무시당하시는 성령님의 상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시51:17). 그런데 이런 상한 심령을 무시하고 무인격적으로 주님 앞에 회개(?)하고 있다. 내가 하나님이라면 ‘그런 회개는 안 받는다’ 하고 듣지도 않을 텐데, 예수 피 보시고 우리의 진정한 회개를 기다리시는 주님 앞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곧 ‘전 성도 40일 그리고 10일 작정 기도회’가 시작한다. 올해에는 지난해와 다른 기도 제목이 나온다. ‘이번 작정 기도회 때 애통하는 마음, 상한 심령 주셔서 실컷 회개하게 해 주세요. 그래서 주님 마음 풀어 드리게 해 주세요.’ 주님 앞에 내 이익만 앞세우지 않고 주님의 마음을 알아 드리는 자가 되고 싶다.
/강유림 교사(고등부)
現 초등학교 교사
위 글은 교회신문 <52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