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7-09-19 18:11:33 ]
새벽에 밖에서 ‘쿠쿵’ 하는 큰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몸이 튕겨져 일어났다. 머릿속에는 ‘북한, 전쟁, 핵폭탄, 장사정포, 화학탄, EMP’라는 단어가 빠르게 지나갔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도 같다. 이 방 저 방 다니면서 잠든 어머니, 아내, 아이들이 무사한 것을 다 확인하고 나서야 제정신이 들었다.
연일 뉴스에서는 전쟁이 날 것처럼 북한의 도발 징후를 알린다. 비상시 사용할 생수라도 사 놓아야 하나? 남들은 생존배낭이다, 방독면이다 준비한다는데. 터지는 폭탄의 종류에 따라 “지하로 가라, 산으로 가라” 말은 참 많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교회에서 보자’고 가족들과 말해 놓은 것을 곱씹는다. 한 번 잠을 깨니 이런저런 생각에 다시 잠들기가 쉽지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 걸까?
아침이다. 피곤이 가시지 않는다. 신문을 펼쳤다. 1면에 시위대와 경찰이 엉켜 있다. ‘426일 만에…새벽 사드 배치 작전’. 시위자들이 농기계와 화물차량으로 마을 입구를 막은 모양새다. 그것도 모자라 차량과 차량을 쇠막대로 연결해 용접까지 해 놓았단다. 20대 남성 4명이 “사드 반대” “미군 철수”를 외치면서 철책을 넘어 사드 기지 안으로 들어갔다가 연행되었다고 한다.
1990년도 초반 어리숙한 대학 신입생 시절, 선배 손에 이끌려 시위에 나간 적이 있다. 그때 선배가 내 손에 들려 준 피켓의 문구도 ‘미군 철수’였다. 세월은 흘렀는데 참 달라지지 않았다. 사드가 무용지물이라고 외치던 일부 정치인들은 이번엔 사드 배치가 ‘불가피’하다고 한다. 어느 신문사 주필의 칼럼 제목이 ‘정말 나라도 아니다’이다. 1991년 ‘주한미군 핵 연내 철수’ 이후 ‘한국 대통령들의 바보 드라마’가 이어지는 동안 북한은 핵폭탄 6차 실험에 성공했다.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 걸까?
점심이다. 식욕이 전혀 없다. 라면이라도 먹자는 생각에 레인지에 물을 올렸다. 물이 다 끓었나 싶어 냄비 뚜껑을 열어 보니 물 표면에 미세한 진동이 보인다. 물이 끓기 직전이다.
오후가 되니 뉴스가 쏟아져 나온다. 우리 정부와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북 몰아세우지 말라”라고 한다. 이번 사태를 보는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이 ‘북핵 없애겠다고 북한 정권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원칙이 확고하다”고 말한다. 일본은 이미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다. 북한이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하자마자 일본은 바로 준비에 들어가서 사드의 10배 이상 요격 범위를 갖춘 미사일방어 시스템을 구축해 놓고 있다. 북핵이 공인되면 일본은 어떠한 행보를 보일까? 미국 대통령은 연일 군사옵션을 언급하는 동시에 기자들의 핵심적인 질문에는 “두고 보자”라고만 한다. 물이 끓기 직전처럼 주변이 부글거리는데 우리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점점 더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는 듯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 걸까?
밤이다. 저녁을 거르고 늦게까지 일했다. 머리도 복잡하고 쉬고 싶지만 교회로 왔다. 우리 고등부 학생들이 기도하고 있다. 우리 가족과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다. 모두들 그렇게 일상을 버텨 내고 기도하러 온다. 겨우 도착했더니 담임목사님이 마무리 기도하는 시간이다. 마이크가 켜지고 첫 음성이 들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담임목사님은 거친 숨을 내뱉으면서 한마디 한마디 기도를 이어 가신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이 땅의 기독교를 위해, 성도들 믿음을 위해 기도하신다. 기도가 설교 한 편이 되고, “아멘” “아멘” 화답하는 성도들의 음성에도 비장함이 담겨 있다. 제발 우리를 지켜 달라고, 제발 우리 성도들 믿음 달라고, 주님이 지킬 만한 우리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다.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아는 자의 애절한 절규이자 주님의 심정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마음이 더욱더 무겁다.
/김기환 집사
고등부 부장
위 글은 교회신문 <54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