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말처럼 쉽지 않은 용서

등록날짜 [ 2017-11-06 17:25:57 ]

세월 속에 깊이 묻어 둔 상처 아직도 아물지 않은 것 발견해
성경 말씀에 내 모습 비추어 보고
용서와 사랑 없음을 깨달아 회개하게 돼


“아빠! 누군데 그러세요?”

전화기를 든 내 표정이 점점 굳어지자 딸이 물었다. 걱정하지 않도록 얼버무렸지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노기(怒氣)를 쉽사리 감출 수 없었다.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수많은 사람과 부대끼고 별별 일을 겪지만, 어떤 사람은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미간이 찌푸려진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당시의 불쾌함을 잊을 수 없다. 오늘 내게 전화한 사람도 그중 하나다. 한때 직장 상사였던 그는 머리 회전과 상황 판단이 빠르고 권모술수에 능했다. 함께 일하는 동안 마찰의 연속이었고, 결국 그의 은밀하고 악의적 업무 탓에 말할 수 없는 어려움과 고통을 겪었다.

결국, 큰일이 터졌다. 혼자만 살아남으려고 급급했던 그는 경징계와 함께 다른 지역으로 전출되었고 나 역시 공직에서 가장 큰 징계인 ‘파면’ 다음의 ‘해임처분’을 받아 공직을 떠나야 했다. 해결 과정에서 그는 한 인간에게 얼마나 실망할 수 있는지 끝을 보여 주었다. 무엇보다 가슴 아프고 용서되지 않는 것은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한 것이다. (후에 사실 여부가 밝혀지면서 나는 행정 절차에 따라 복직했고, 그는 전출된 곳에서 또 다른 사건으로 구속과 파면되었다.)

큰딸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던 중 그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휴대폰에 뜨는 그의 이름을 보고 얼굴이 굳어졌다.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다 결국 전화를 받았다.

“우리 딸이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됐는데 축하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어찌 사람이 이럴 수 있을까?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어떻게 나에게 자신의 딸 결혼식에 참석해 달라고 할 수 있을까? 허탄함과 현기증이 일었다.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옛 묵은 감정은 세월에 흘려보냈을 줄 알았고, 이유야 어떻든 내가 잘못 판단한 부분도 있으니 ‘다 내 탓이오’ 하고 지냈지만 그를 용서할 수는 없었나 보다.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성경 말씀에 순종하고자, 결혼식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에 대답하긴 했지만 직접 만나서 웃으며 축하한다고 할 용기가 없었다.

신앙 양심상 마음이 무거웠다. ‘그것도 용서하지 못하면서 네가 어찌 예수님의 피 흘림으로 구원받은 자라고 할 수 있단 말이냐?’ 마음속에서 책망이 밀려왔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네 원수를 사랑하라”(마5:44)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마18:22)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이행하지 못했다. 반대로 ‘나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혔겠는가?’ 생각해 보면, 누군가 내 탓에 지금도 그 상처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닐지, 얼마나 미안하고 죄스러운지 모른다.

그날 이후 나로 인해 상처 입은 분들을 위로해 달라고, 나를 용서해 줄 수 있도록 그분들의 마음을 녹여 달라고 기도한다. 천국 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우리 삶이 어때야 하는지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주님! 용서할 수 없는 자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하게 하소서. 저들을 용서해야 제 죄가 용서받나이다.’


/윤웅찬 집사
13남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55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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