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관계

등록날짜 [ 2017-12-19 14:29:23 ]

연말 맞아 삶의 관계, 하나님과 관계 돌아보고
상대방과 하나님 입장 헤아리지 못한 죄 회개해


연말이 다가와서 예배 전후에 ‘대인·대물·대신 관계를 잘 마무리하라’는 광고를 들으면서 지난날 함께한 사람들과 주님과 어땠는지 ‘관계’를 돌아본다.

우리 교회에 전도돼 와서 은혜받고 누군가를 섬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 당시 나를 섬겨 주던 직분자와 마찰을 빚었다. 말다툼을 하거나 금전상 무슨 손해를 본 것은 아니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내 마음에 계속 불평불만이 생겼다. ‘왜 말과 행동을 저렇게 하지? 다른 사람한테는 친절하게 대하면서 왜 나한테는 퉁명스러울까?’ 사소한 일로 섭섭함이 쌓이자 그 직분자와 한자리에 있는 것도 불편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죄짓는 나 자신도 못마땅했다. 성경에 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도 매인다고 했다. 담당 직분자와 그렇게 막혔으니 기도가 안됐다. 예배나 모임, 심지어 혼자 있을 때조차 힘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받은 섭섭함을 털어놓자니 내가 너무 좀스러운 것 같았다. 마음의 짐이 점점 쌓여 갔다.

그러던 중 기도하다가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9)” ‘과연 나는 그 직분자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있었는가?’ 그러다 다시 반문했다. ‘직분자가 나를 사랑해 줘야 하는 것이 아냐?’ 하지만 주님의 말씀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행하라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당부하신 명령이다. 내가 섬겨야 할 사람은 믿음이 연약하기에 그의 사정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나를 섬겨 주는 직분자도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 직분자도 예수님의 핏값으로 산 영혼이고, 나처럼 문제나 고민이 있는 연약한 존재인데, 왜 나는 그에게 사랑을 받기만 해야 한다고만 여겼을까?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9~12).

뛰어난 사람이 부족한 사람을 끌어 주라는 말씀이 아니라 인간은 모두 부족하니 서로 협력하라는 말씀이다. 관계가 끊어지는 이유는 ‘나를 존중해 주세요, 나를 사랑해 주세요’라면서 오직 ‘나’에게만 관심을 집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깨닫고 회개하고 나니 내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누구를 만나든 사랑하고 품어 주려는 마음을 주님께 공급받았기 때문이다.

나와 주님의 관계는 어떨까? 나 혼자만 “주님을 믿습니다”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주님도 나를 믿어 주셔야 한다. 그런데 내가 주님에게 사랑받는 것으로 끝나면 나와 주님의 관계는 영원해질까? 인격적 측면에서도 받은 것이 있으면 주는 것이 당연한데 나는 주님께 사랑받으려고만 했지 주님께 사랑을 드린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한 것 같다. 예배 때 ‘은혜받게 해 주세요, 기도 응답해 주세요, 직분 잘 감당하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는 수없이 했지만 “예배드리며 주님께 영광 돌리길 원합니다. 주님 사랑해서 직분 감당하여 주님 마음 시원하게 해 드리고 싶어요” 라는 기도는 얼마나 했을까?

지난 추수감사절 성회 때 담임목사님의 설교 중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남는 내용이 있다. “주님께 여쭤봐. 주님, 제 사랑을 받으셨냐고.” 내 속에서는 ‘나는 네 사랑 받은 기억이 없는데’라는 소리만 돌아올 뿐이었다.

2018년에는 내 모든 삶이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 드려지길 원한다. 그래서 주님 앞에 섰을 때 이런 음성을 듣고 싶다. “너의 사랑을 받았다.”



/강유림 교사(고등부)
現 초등학교 교사


 

위 글은 교회신문 <55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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