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오지랖 넓은 게 어때서

등록날짜 [ 2018-02-28 10:40:37 ]

넉넉지 않은 살림에 남부터 챙기는 여전도회원들 ‘넓은 오지랖’ 보며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그 관심과 사랑 덕분에 우리 교회 딱 달라붙어 신앙생활 하게 돼


사실 청년 때는 ‘청년회 모임’에 나간 적이 별로 없다. 직분자가 권면하면 간섭처럼 느껴져 그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내가 알아서 해요.” 교만한 말로 선을 그었다. 당시에는 나 외에 타인의 일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니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나조차 자모실은 ‘무장 해제’ 할 수밖에 없는 ‘불가항력’의 장소다. 한 아이가 순식간에 다른 아이의 간식을 집어 먹고, 밀치고 때리고, 장난감을 뺏고 뺏기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거기에 더해 예배시간에 돌아다니는 아이를 잡으러 쫓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설교가 끝나고 통성기도가 시작되는데 그때의 허탈함이란! 자모실에서 예배 한 번 드리고 나면 엄마들과 마음이 통해 절로 ‘전우애(戰友愛)’가 발생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다른 집 애와 비교가 된다. 우리 아이에게 조금 뒤처진 면이 보이면 초보 엄마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는다. ‘우리 아이가 개월 수에 맞게 잘 자라고 있는 걸까? 내가 뭘 잘못해서 발육이 느린가? 검사라도 받아야 하나?’ 불안함이 밀려온다. 아이가 전염병에라도 걸리면 더욱 난감하다. 출근은 해야겠고 의지하고 맡길 데는 없고 답답함이 북받친다. 또 온종일 일하다 지친 몸으로 퇴근하면 폭탄 맞은 듯한 집안 꼴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가끔은 지척에 친정엄마를 둔 사람들이 부러워 엄마 없는 서러움을 느낀다. 어디 육아뿐이겠는가. ‘남의 편’만 들어 남편이라더니, 내 마음 몰라주는 남편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을 때도 더러 있다. 별 뜻 없는 시댁 식구들의 언행에 서운함이 느껴지면 기도도 하기 싫다. 어디 멀리 떠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 마음도 잠시뿐. 여전도회에 포진해 있는 ‘오지라퍼’(오지랖과 ‘~를 하는 사람’이라는 영어 접미사 -er의 합성어로 오지랖이 넓은 사람을 이르는 말)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곳곳에서 출동한다. 옆자리에 밀고 들어와 “뭔 일 있어?” 묻는 사람부터 “어디 아파?” 이마를 짚어보는 회원, 지나가다가도 “얼굴이 왜 그래? 힘들어?” 불러 세우는 이까지.

처음에는 이들의 오지랖이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넉넉지 않은 살림을 꾸려나가면서도 남부터 챙기는 이들을 보며 한심해 했다. ‘내 가족부터 챙기지 남을 왜 챙겨?’ 자기 아이가 셋이나 되면서 다른 집 아이까지 돌봐주는 이를 보며 ‘오지랖이 태평양이네~’ 하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친정 다녀오면서 싸 온 밑반찬을 내 생각났다며 챙겨주는 여전도회 식구들, 내 작은 기도 제목 하나에도 같이 고민하며 울어주고 웃어주는 구역 식구들. 부담스럽기만 하던 오지랖이 점점 관심과 사랑으로 다가왔다.

지인 누군가가 “너 아직 연세중앙교회 다니느냐?”고 물었을 때, 내가 이제껏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대학생 시절 ‘날라리’로 우리 교회에 온 내가 한여름 엿가락처럼 연세중앙교회에 딱 붙어 있는 건 여전도회 오지라퍼들의 사랑과 섬김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최고의 오지라퍼는 성도 모두 천국 가기를 오매불망해 애타게 “천국 가자!” 외치는 담임목사님이시지만.



/김은혜 집사
80 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56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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